내 위장은 오늘 아침부터 완전 돈까스 모드다.

-고독한 미식가 中

1.

제가 내 장소 찜이라는 걸 하면서 살아왔다는걸 최근 들어 알았습니다.

저는 북마크가 미어터지도록 방치하면서도 최소한의 분류 태그만 다는 인간이고, 거기서 재검색을 돌려 필요한걸 빠르게 찾는다는 자체 데이터베이스 ㅋ 구축형 인간인데요. 구글이나 네이버에서는 로그인을 한채로 장소에 북마크를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더라고요. 전 제가 그걸 안쓴다고 생각했는데 쓰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보지도 않을 거면서 잔뜩 찜만 되어있던 나의 장소들…

거기엔 돈까스가게가 다섯개씩 들어가 있었습니다.

제 브라우저 북마크에도 대충 일곱개 있습니다. 겹치지도 않아요.

우리 지역만 따진건데, 돈까스집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걸까요? 제가 이걸 진짜 다 먹고 다니기는 한 걸까요? (그런 것도 같다는 게 제일 무섭다…) 하여튼 저는 돈까스 헌터인데, 얼추 스무개의 가게를 먹어도 그 맛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전 원래 어디서 무슨 돈까스를 먹어도 그럭저럭 만족하는 인간이었는데, 대충 4년전에 발견한 저만의 단골집에서 입맛이 너무 격상된 것입니다. 그 가게는 제게 돈까스의 이데아를 확립시켜주었고, 돈까스를 먹고 싶다고 생각할때 떠올릴 ‘진짜’ 돈까스를 주었으며, 돈까스를 먹는다 = 그 집에서 먹는다 수준의 알고리즘을 만들게 했습니다.

비록 그 가게는 소리소문도 없이 지난 해에 문을 닫았지만… 우리가 함께한 3년이라는 세월은 제 심장에 상흔으로 남았습니다. 저는 이제 어느 집 돈까스를 먹어도 예전처럼 마음이 두근거리지 않아요.

저한테는 인생이 변할 정도의 사건이었나봅니다. 지난 1년간 저는 종종 발작적으로 돈까스 생각을 하며 돈까스를 먹었는데, 어느 집도 그 맛이 아니었어요. 제 주변사람들에게 그럭저럭 제 기준 5점 만점 4점짜리 돈까스 집을 데려가며 여전히 그 가게를 생각하곤 합니다. ‘이게 아니야… 이 도시에는 진짜가 존재했다고’ 이러고 말이에요. 저도 가끔 제가 이런 것에 진심인 인간이라는 걸 깨달을 때마다 어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지방층과 튀김옷의 밸런스가 느끼하지 않을 정도로 유지되는, 바삭하고 촉촉하고 잡내 없으며 도톰한… 그 맛을…

돌아와요 사장님… 나 미쳐버릴지 몰라…내가 당신에게 광공처럼 굴고 있어요…

2.

제 위장상태가 요즘 과히 좋아서 이런 참극이 벌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새벽5시에 배가 고파서 일어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일어나면서부터 ‘졸라 배고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신장이건 뭐건 문제가 없기 때문에 그냥 저녁이 다 소화되어서 그런게 맞다더군요. 놀랍다.

여튼 일어나면 저는 허겁지겁 요리를 해서 뭔가를 입에 넣는데요. 요즘 하필 근방에 너무 끝내주는 내장탕집을 찾아서 아침마다 포장해온 것을 먹고 있습니다. 전날에 술도 안먹고 이렇게 해장국에 미친놈도 별로 없을테지만, 저는 원래 시험기간에도 등에는 공부할 거리를 메고 도서관에 가다말고 뼈해장국 집에 들러 식사를 하곤 했습니다. 처먹다가 삘받아서 막걸리를 아침 9시부터 한사발 들이키고 그대로 공부하러 갔어요. 영양만점 고나트륨 완전식품이니까요. (아닙니다 고열량이니 조절해 드세요)

해장국은 아무리 그래도 칼로리가 너무 높긴 합니다. 이걸 적어도 점심쯤 먹어야 저혈당 없이 눈 맑은 하루를 보낼 수 있고, 제가 칼로리 맞춘 식사라는 걸 할 수 있는거죠. 그래서 저는 점심에도 뭘 좀 먹어야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방금 먹은 칼로리를 소비하기 위해 아침부터 중무장을 하고 겨울 산책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게 말하다가 깨달은 건데 산책을 가려고 내장탕을 든든하게 먹은게 아니라 내장탕을 먹었으니까 산책을 나가는 겁니다. 먹고 싶어서 먹었다기 보다 본능에 이끌려 해치우고 보니 정신이 들었다고 해야될까요.

이 상태로 산책을 나가면 배는 든든하고 몸은 따듯하고 너무 행복합니다. 심지어 저는 나가면서 본능적으로 TPO를 맞춰서 저의 러닝화에, 러닝 양말에, 비니에, 기모 트레이닝 바지에, 바람막이, 후드, 여튼간에 엄청 따숩고 러닝하기 딱 좋은 복장으로 나가거든요.

그럼 또 걷다말고 너무 뛰고 싶은 겁니다…

근데 어제 달려보니까 이게 한 10분째부터 비니랑 눈썹에 이슬이 맺혀서 (ㅋㅋ) 웃겨서 뛰다가 멈췄거든요. 마스크도 뭔가 찬공기를 막기엔 영 아닌 것 같고, 마스크 위에 넥 워머를 끌어올리는게 맞긴 할텐데 그러면 또 산소가 부족할까봐서요. 일단 좀 대비책을 세워보고 달려야겠더라고요. 근데 다 마련하고 나가면 진짜 안뛴다고? 방금 5분 걸어서 딱 뛰기 좋아 나? 하고 온몸이 들썩들썩해요. 그냥 척봐도 땀 묻으면 곤란한 옷 입고 나가야 저도 정신머리라는 걸 챙기고 뛰기도 불편한데 걍 걷자, 할테지만 새벽녘에 걸어다니면서 감기 안걸릴 복장은 운동복이고…

쓸수록 그냥 제 인생의 원리는 대충 그거입니다.

‘저질러놓고보니까 뭔가 아니지만 그냥 이대로 달리자’ 하는… 수미상관에 서로 밀도 안맞는 말 붙어있는 그림 있잖아요. 저는 이제 뒷다리에 말이 아니라 고양이가 붙어있어도 걔 쓰다듬으면서 굿도그, 굿도그. 해요. 그렇게 그냥 가놓고 나중에 가서 이거 말이었지. 하는.

나갔다가 또 너무 열심히 칼로리소비하면 큰일나니까 오늘은 무산소하려고요.

우리 강아지(인생) 오늘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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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아 알림이 ㅠ 똑디 안떠서 이제~~!! 이럴수가 감사합니다… 선생님도 늘 행복하십시오 선생님이 창작하시는. 모든 것. 제가 좋아합니다…성공하세요 번창하세요…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