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미도 6-12까지의 내용, 히로의 심문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조야/히로/켈시의 이야기, 군단의 이야기를 합니다. 거의 ‘지금부터 나 자신을 군단과 한몸으로 간주한다.’ 하는 마인드가 깔려 있습니다. 저는 켈시 실장까지 숨을 참기로 했고, 지금 영혼이 되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얘네는 가족이라고요, 가족! (이글의 첫 제목이었음)
놀랍게도 저는 맨 처음엔 엑스맨 좋아하던 놈이 무기미도도 하네, 하는 의미에서 두 작품을 엮어서 얘기하려고 했었습니다. 적다보니 첫번째 글이 너무 길어지기도 했고, 두 작품의 공동체 서사가 반드시 같은 의미는 아니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어서 분리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군단 좋아하시나요?
군단에 들어오지 않으실래요? 이 동네에서 먹고 살려면 들어오시는 게 좋아요.
신디케이트를 부순다는 것도 아니고 왜 하필 먹고 살기 위해서냐고요?
그야 이 골칫덩어리 신디케이트의 최강 집단은, 모터케이트 운전수들이 만든 곳이니까요.
그래, 먹고 사는 이야기
‘먹고’ ‘사는’ 이야기를 하기에 신디케이트만큼 적당한 곳이 또 없습니다. 일단 의식주가 가장 큰 인생의 고민이니까 늘 하는 얘기가 결국 그거거든요. 갱에 들어가거나, 백기실업처럼 뭐라도 차린다면 또 얘기가 달라지긴 하겠는데… 백기실업도 늘 먹는 얘기하지 않나요? 돈을 세는, 아니 빚을 세는 K.K…나머지 둘은 세지도 않아…
여튼, 히로의 과거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맞겠죠. 이건 군단에 소속된 히로가 조야에게 한바탕 크게 져서 억울해하는 사건(조야 전용낙인 일러스트 봐주세요)보다도 더 거슬러 올라간, 이전의 이야기입니다. 아직 히로가 누군가를 열심히 동경하고 쫓아가지 않았을 때, 싸워서 이긴다는 감각보다도 무력감에 익숙했을 때. 히로의 세상에 존재하는게 켈시와 자신 둘뿐이었을 때요.
히로, 조야 등 신디케이트 사람들의 입을 빌려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이렇습니다. 갱단이 사방을 설치며 폭력을 삶의 논리로 만들고, 지역의 모든 질서를 결정하고, 그러면서도 제멋대로 어기는, 정부는 더이상 신디케이트라는 영광의 땅을 기억하지 못하며, 기억하는 사람도 없게끔 언급조차 않는 나날입니다.
여기 누가 살고 있을까요. 누가 아직도 그런 데에 살까요? 신성사람들은 신디케이트가 죽은 줄 압니다.
걸어가는 곳마다 폐허이고, 쓰레기인 줄 알았던 모든 것들이 사실 누군가의 집입니다. 완전히 버려져 (엘라의 표현을 빌리자면)끔찍한 동네에 히로와 켈시의 집이 있습니다. 내부는 안락하고, 낡았어도 깨끗해요. 살던 사람들이 열심히 가꾼 흔적입니다. 집주인들이 돌아오지 못한지 오래되었어도 이곳에 사람이 살았습니다. 히로의 고향은 앞으로도 그곳일테고, 거기서 지냈던 순간들이 끝내는 (막상 당시엔 괴로웠더라도)추억이 되었습니다.
죽어버린 신디케이트. 그곳에는 구구절절한 뒷배경을 모두 알지도 못한 채로 태어난 히로가 있습니다. 그나마 조야와 켈시는 ‘신디케이트의 역사가 어땠으며, 어떤 자들이 이곳을 버렸는지’ 어렴풋이 윗세대에게 전달받을 수도 있는 세대였지만 히로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히로한테 세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금의 신디케이트입니다. 좋은 시절이 있었다고? 너무 오래돼서 그놈의 ‘좋은’ 게 뭔지도 모르겠고 안다는 놈도 없습니다. 놀랄 것도 없고 뒤집어지도록 분노할 것도 없고, 폭력을 쓸 힘도 없으며 늘 답답하고 두려울 뿐이죠. 무모하게 나설 수도 없어요. 폭력의 결과들만 봐도 아는 일들이 많으니 용기도 가질 수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록, 더욱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을 겁니다.
그 와중에 오빠는 모든 일을 혼자 책임지려고 하고요. 얼마나 위험한 세상인지 히로도 나름 잘 아는데, 손윗사람은 괜찮으니 너는 집에 있으라고 해요. 이건 히로를 보호하는 행동일 수도 있지만, ‘약한 널 어쩔 도리가 없으니 세상으로부터 격리해두겠다. 네가 힘을 갖추기 전까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라고 하는 것처럼 해석될 수도 있죠. 실제로 히로에겐 노동할 힘도, 지식도 없습니다. 히로의 표현에 따르면 무렵의 히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어린아이였어요. 히로가 아무것도 아닌, 어린 아이같은 자신을 미치도록 싫어하는 이유는 당연히 이 표현에 담겨 있다고 봐야겠습니다. 히로는 애도 맞고, 죄책감같은 건 느끼지 않아도 되지만 여기선 이 얘긴 생략할게요.
여긴 사람이 사는 곳, 아직 사회가 유지되긴 하는 곳입니다. 먹고 살려면 결국 누군가는 일을 해야하는데, 사람을 해치는 일이 아니고서는 삶을 진행할 수가 없습니다. ‘연명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은 싫다’는 생각은 신디케이트에서도 누구나 다들 갖고 있는데, 그렇다고해서 연명 아닌 삶을 알진 못합니다. 애초에 연명 아닌 삶이 뭔 줄 아는 사람은 이미 다들 이곳을 떠났거나, 아는 채로 들어와서 언제 나무가 될지도 모르는 씨앗들을 끌어안고 제 몸을 방패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앤, 아이언, 보안관 레거트) 그것이 최선입니다. 결국 지금 살아있는 자들은 눈앞에 날아드는 총알을 잠시라도 잊으려 애쓰며 살 수 밖에 없죠. 그것도 삶이고요. (조야의 몽경에 끝내 레거트와 켈시가 나오듯이. 그 모든 건 끔찍하다가도 충실히 삶이고 기억이었습니다. 당연하지만,여기도 사람이 살아요!)
켈시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그의 인생도 별 다른 면은 없어요. 막 청년에 접어드는 소년에겐 책임져야할 어린동생이 있고, 이 망해가는 신디케이트에서도 필수인 운수업을 담당하는 모터케이트 운전수가 되었으나, 늘상 핍박을 받기 일쑤였습니다. 아는 건 비교적 있고, 행동할 체력도 되니 켈시의 공포는 히로와 조금 다른 결입니다. 정확히는 히로를 지켜야하니 공포를 느낄 틈이 없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그는 행동할 명분과 힘을 얻습니다. 강인하고 비상해보이고, 뱀같다면야 그 모든 면은 결국 저기서부터 형성된 거죠. 히로가 잘못된다면 금세 창백해지듯이, 켈시는 히로가 있으니 그만큼 강할 수 있었습니다. 켈시가 히로를 정확히 어떤 식으로 키우고 싶었을지는 미지수지만(생각은 해봤을텐데), 결코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았을거란 점만은 분명해요. 무엇보다 이곳엔 ‘키운다’ 는 미래가 없습니다.
조야를 돌보았던 보안관이 결국 조야를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나고, 켈시가 히로를 둔 채 죽고 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곳의 양육은 피양육자의 생존을 위한 제살 깎기고, 대신하는 죽음이며, 끝내 파괴를 결심한 사람을 동경하는 일이에요. 히로는 ‘이곳이 완전히 파괴되길 바란다’ 는 조야를 완전히 우상시 합니다. 조야의 신념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나중에 이야기하고, 일단 겉면은 그래요.
히로는 이 세상의 불균형과 무력감을 경험하고 자랐습니다. 수감자가 되어서 아이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드디어 힘이 생겨 무력의 세계에 입성하는 일이 가능케되었으니까. 조용히 숨죽인 채 숨어 살면서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니까. 이 한번의 계기가 히로를 세상으로 내보내는 통행증이 됩니다. 용기의 계기였다가, 군단을 만나 영원히 돌아가는 동력이 되죠.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힘. 무력감 너머의 힘.
결국 군단 이전이나 이후에나 세상은 무력으로 돌아갑니다. 그들은 여전히 힘있는 사람을 따르고 있어요. 시각화된 계층이 끊임없이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게 신디케이트입니다. 미리 줄을 잘 타거나(갱단에 들어감) 강한 힘에 기대어(변이무기) 지내는 게 그들 나름의 최선이었는데, 군단 이후에는 이제 조야라는 최강을 얻어 파괴 당하고, 파괴하기 위해 나아가는 집단이 생겨나죠.
재밌는 부분은, 그들이 맨처음엔 신념보다 앞서 한순간의 의기로 탄생했다는 점입니다. 운전수들이 가진 마음은 단순한 파괴욕구도 아니었을테고, 설령 그렇다고해도 똑바로 돈 받고 안전하게 살겠다는 마음 위에서 벌어진 분노였을 겁니다. 피해자로서 촉발된 분노. 피해자로서 출발한 집단이 이제는 어엿하게 하나의 세력을 이룹니다. 히로가 무력세계에 입성했다고 했지만, 켈시가 그것을 (마지못해서라도)허용했다면 이 집단의 성격이 결코 다른 갱단과는 다르다는 인식 덕분도 있었을 겁니다. 더이상 아이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일도 무의미했을테고요.
‘먹고 살자고’ , ‘이대로는 도저히 안된다고’. 그럼… 그들이 바라는게 혁명인가요?
이건 정확히 어떤 의미의 사건일까요?
군단은 어째서 존재합니까?
군단의 탄생은 선했나요? 필수적이었습니까? 앞으로도 그럴 건가요? 타인이 판단할 수나 있나요?
그들이 갱단과 정확히 무엇이 다릅니까?
이미 죽은 세계를 부수는 법
사실 저 질문들은 아무 의미 없습니다. 누가 알겠어요? 다만 쉽게 물어볼 수 있을 뿐이에요. 물어봄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자기검열할 틈을 만들려는 적들의 수많은 노력이 있겠지만, 그건 결국 군단 자신이 스스로에게 물을 때에나 가치 있습니다. 군단의 적은 군단을 견제하기엔 너무도 퇴폐했으니까요. 질문 가능한 위치에 남은 것은 국장 정도일까요. (하지만, 그걸 묻지 않는 사람이라서 아직도 여기 남아있지요. 그가 오로지 자신을 지우는 이해와 구하고자하는 신념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하여튼 세월이 지나 역사가들이나 분석할 내용은 내려두고.
우리 조야 이야기를 해볼까요.
감염된 이들중 인간의 형태를 잃지 않고 온전하면서도, 맨처음 목격할 때는 누구보다 괴물에 가까운 존재가 조야입니다. 막강하고 위압적이면서도 폭력적이에요. 덩치때문만이 아니라 그 자신이 가진 감정이 곧 자기자신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감정은 대개 자신에게만은 거대하고 완전히 꺼내놓을 수 없거나 초라해지기 마련인데, 그것 그대로를 살며 그 나머지를 모두 불길에 집어넣으면 딱 조야같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인상이 계속 이어지는 건 아니에요. 조야는 그런 감정 속에서도 인간이고, 인간이기에 이성적이고, 인간이기에 인간을 믿습니다. 결국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조야의 뒤엔 따르는 이들이 있어요. 조야가 가진 감정적 분노는 너무도 명백하고 흔들림 없는 사실인데다, 누가 뭐래도 분노로 살아가며 ‘너희들이 파괴되길 바란다’ 고 하는 사람인데도요.
그렇다면 오로지 그의 카리스마에 휘둘려 정말로 다같이 죽기 위해 나아가는 집단이 군단인가요? 당연히 그건 아닙니다. 뒤에서 가다듬고 통제하는 사람이 있어서일까요? 켈시가 뒤에 버티고 있다 한들, 딱히 그 신념이 부정된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관계는 협력관계이지 이 상황을 통제하는 것이 둘 중 하나인 게 아니니까요. 무엇보다 히로가 있는 켈시가, 결코 그런 식으로 파괴되어서는 안되는 동생을 데리고 말그대로 되기 위해 나섰겠나요?
그럼 이렇게 됩니다. 조야의 말들에 뒤섞인 의미가 제법 이성적으로, 감정적으로 설득력이 있었다고요. 그것에 공감하다못해 진심으로 이루어져도 되겠다고 생각할 만큼 합리를 느낀 이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결국 이 감정엔, 이 파괴엔 숨은 의미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떠한 합리마저 있습니다.
혼란스럽고 분노서린 어린시절을 지나며 조야가 내린 결론이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조야가 증오하는 것은 모든 인간이 아닙니다. 자신을 직접적으로 괴롭힌 특정 집단조차 아니고, 더 좁혀서 레거트를 죽인 이들도 아닙니다. 그 모든 걸 증오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들은 이미 사라졌겠죠. 사라진 것에게 복수할 수 없고 복수한다한들 이 분노가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잃어버린 것들이 여전히 조야의 등뒤에 붙어 외쳐요. 어째서 아직도 모든 게 엉망진창인거야! 뭘해도 이 혼란은 결코 끝나지 않아! 어째서! 하면서요. 결국 이어지는 분노 위에서 이 생명력 넘치는 인간은 다른 이들과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생존을 추구합니다.
먹고 사는 일도, 같은 말로 분노를 삭이며 죽어가는 일도 아니에요. 자기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일로써 계속 타오르길 결정해요. 그게 조야가 스스로에게 천명하고 기대한, 해결(解決)과 해갈(解渴)의 방식입니다. 이것만이 조야를 살게 해요.
조야는 이 도시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박살내기로 합니다.
결국 위에서 한 얘기와 같지 않냐고요? 달라요. 왜 다르냐면… 이 파괴의 정의를 매기기 전에, 신디케이트를 해야겠죠. 앞서 말했듯이 신디케이트는 폭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폭력이 논리고, 폭력이 질서를 결정하며, 폭력만이 질서를 깨뜨릴 수 있죠. 조야는 그 위에 서서 그런 질서와 뗄래야 뗄 수 없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영원히 이어지는 폭력. 삶을 진행하기 위해 도시의 모든 이들이 한번씩 제 손에 쥐고 놓지 않았던 것. 수단이자 삶, 한 번 손댄 이후로는 자기자신을 정의하는 개념. 이 도시의 정의는 그것입니다. 파괴의 목적은 여기 있습니다.
“나는 너희들이 파괴되길 원해.” 라고 했나요? 온전히, 스스로 폭력 그 자체인 인간이 외치기에 더욱 자기파괴적 설득력을 지니는 말입니다. 저 대사의 합리, 어떤 면에서 공리에 닿는 면은 그것입니다. 스스로 불타 없어지길 바라는 인간이 꿈꿀 수 있는 가장 희생적인 결말이죠. 동시에 조야 자신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너무도 박애적인 구석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신디케이트 이외의 것들을 염두에 두지 않는 엄청난 관대함이자 무자비함이죠.
여태 살아온 모든 것을 부수는 것. 생존해온 모든 이들이 그 생존을 버리고 일어서는 것. 그러기 위해 완전히 부서지는 것. 그 외의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굴종하고 싶지 않았던 이들이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신념이에요. 모터케이트의 운전수들은 ‘더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 (더 단순하게는 ‘그만 좀 건드려라’)고 하며 모인 뒤, 조야가 새로이 들어온 뒤에도 자연스레 그를 따릅니다. 결국 이것이 혁명이라면 누군가는 그렇게 칭하겠죠. 이 역사를 구분짓기 전에 인간의 본질을 위해 말해둬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성보다 감정이 ‘옳은’ 가치일 때가 있다는 것.
조야 자신이 몽경속에 헤매며 감정의 격랑에 삼켜지고, 무너지길 반복하듯이. 그를 내보내려던 마지막 풍경이 너무나 따스했던 것처럼. 사람의 감정은 한번 일어난 사건 위에서 떠나지 못하기도 하고 (과거의 모습으로 나타났던 조야, 어린애 취급에 펄쩍 뛰는 히로), 약점을 지닌 채 꾸준히 흔들리기도 하지만 (히로에 관련된 일들에만 안색이 파리해지는 켈시) 이 흔들림이 없다면 살아갈 이유조차 없습니다. 흔들림 위에 지어진 풍경이 추억에 불과하거나, 끝내 쉽게 스러져 어두운 수렁에 사람을 빠뜨린다고 해도요. 추억이 삶입니다. 앞으로도 생겨날 모든 것들이 추억입니다. 그렇게 ‘지금 이순간’ 현재까지 사랑하게 되죠.
그러므로 그들의 의도가 무엇이건 그들이 삶을 추구한다면, 알지 못하나 있었던 안정을 추구한다면, 그 안정이 생존보다 ‘사치스러운’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바라마지 않던 진정한 삶일 것입니다. 그들이 단순히 삶을 추구하는 한 복잡한 가치는 무의미합니다. 삶이 가장 중대한 공리니까요. 되돌아가 말했듯이 삶은 감정으로 지탱됩니다.
그리하여 군단은 모순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폭력으로 지어진 군단은 무기를 내려놓기 위해 존재합니다.
모든 것을 불태우려는 조야는 끝내 인류가 존재한 이래 내내 불꽃이 우리에게 그러했듯이, 삶을 연명하게 하는 불길이 됩니다.
그들은 언젠가 끝날 최후를 기대하며 때로는 그 다음의 미래도 꿈 꿉니다.
이것이 군단 자신이 자신에게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이에요. 너무도 자신이 되어버린 것들을 없애고 말리라는 결심. 그런 것들이요.
+잡다한 이야기
켈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싶었는데 적다보면 제가 밑도 끝도 없이 “실장 안해주면 울거다” 를 길게 늘여 쓸 것 같아서 줄였어요. 위와 상관없는 저의 애들(켈시-조야-히로) 덕질 이야기.
별개로 켈시-조야의 관계는 매번 흥미진진하게 짐작하고 있습니다. 조야 특별대화였나. 거기에서 켈시가 생각하고 자신이 행동한다는 걸 확실히 말하면서 그게 맞다는 식으로 말하거든요. 그런 적절한 입장 분배가 두 사람의 성격을 아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조야는 오래간 감정을 끌어안고 산 사람답게 은근히 기민한 직관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켈시를 정확히 알아봤고, 그게 결국 이런 엔딩까지 오게 만들었죠. 두 사람의 관계는 둘이 믿는 만큼이나 아주 정확하게 단단했던 겁니다. 더불어 켈시는 뱀같은 사내라고 묘사됐지만 조야를 냅다 데려오기까지의 과정을 상상하다보면 꽤나 파격적인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그저 절박했든가요. (절박하더라도 자신을 도박사로 위장하는 타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냉철할 지언정 냉정하진 않아요. 국장에게도 진짜 죽을 만한 조치는 안해둔(못한것도 있지만) 점이 말그대로 군단스럽습니다.) 둘을 보고 있으면 군단의 구성원은 죄다 이렇게 아닌 척 어느 면에선가 호탕한 기질이 있나… 싶어요.
무엇보다 히로가 군단에 들어오기까지의 과정도 그럭저럭 짐작되는 요소가 많아서 좋습니다. 켈시와 유난히 어색해진 지금 상황이라든가, 히로만보면 이러저러 잔소리부터 올라오는 걸 최대한 우다다 말하지 않으려는 켈시가 결국 빈정거림처럼 말하는 것이라든가. 저는 감찰도 열심히 읽는 편인데 (ㅋ) 히로가 옛날엔 치마도 입었다지 않나요. 지금 취향이 히로 자신에게 가장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조야에게 아주 짙게 물든 것 같기도 하고. 히로는 예전의 히로와 많이 달라진 상태이리라는 것만은 분명해요. 그런 면들을 보면 히로에게 켈시가 차지하고 있던 공간을 조야와 더불어 군단 사람들이 채워나간 느낌입니다. 아니 근데 적다보니 그래도 남매 화해할 시간이라도 주지…… 별안간 눈물나네요 (중략)
조야와 히로의 관계는 위에선 진지하게 적어놨지만 어느 면에선 그저 아이돌과 소녀팬의 느낌도 강하게 나요. 조야는 그런 것들 냅두는데다가 가끔씩 가오 딱 놓치지 않고 잡아주는 멋쟁이고요. 히로가 아주 열광할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심문에서의 모습을 보면 그러한 열광을 넘어서 히로 자신의 방식으로 군단으로 돌아갈 약속을 하는 것까지, 폭력 위에 지어졌다고 한들 히로는 켈시와 조야, 이 신디케이트가 만들 수 있는 긍정적 미래의 편린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히로가 조금 더 편하고 안전한 삶을 살면서 또래같기를 바라는 마음을 게임 바깥에서는 종종 갖게 되긴 하는데요. 그와 동시에 히로가 히로답기를, 히로 스스로 행복하기를 바라기도 해요. 더 많은 걸 겪고 스스로 선택하길 바랍니다. 조야는 히로의 한순간을 차지한 히로의 우상일 따름이죠. 저는 그게 좋습니다. 조야가 히로를 믿고, 그러면서도 구하러가는 그 방식도요.
전 이 셋을 같이 세워두고 플레이하고 싶었습니다……………….
무기미도 하세요
이 글을 작년부터 써왔다면 믿으시겠나요.
어느새 해피뉴이어 인사까지 다하고 연말 어쩌고도 쓰고 정신차리니 1월 13일. 세월이 미친듯이 흘러가고 저는 아직도 무기미도를 합니다.
사실 제가 진짜 군단에 들어가버린걸까요? 가끔씩 군단 걱정에 잠이 안옵니다. (반농담)
달달 다리를 까딱거리면서 스토리 공개됐는데 이제 막. 조야 아직도 안나오면 어쩌지? 이러고. 제가 조야를 사랑하기도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군단 이야기가 더 안나오면 저는 노이로제에 걸리고 말 것만 같습니다… 반은 농담입니다. 위에도 몇번씩 적었지만 저는 진짜 대충 6챕 초반까지도 켈시 실장 어쩌고. 이러고 있었거든요. 근데 그런 일은 슬프게도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거라는 예감이 강하게 듭니다.
이런 제가 불쌍하다는 생각에 이런 글을 적었어요. 약간 한풀이 해주듯이… 군단 사랑 질척하게 박인 걸 리뷰라고 적어버렸는데 실제로도 이런 마음이니 별 상관은 없는 것 같습니다.
뭐 한풀이는 커녕 적을 수록 그냥 점점 더 조야 언제 나와 이런 마음이 짙어졌네요 ㅋ…
…
…제가 따악 한 마디만 하고 진짜 가겠습니다.
무기미도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