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엑스맨 무비 시리즈 (엑스맨 1, 2 와 데오퓨, 퍼스트 클래스…는 미미하게 나오고, 가장 크게는 로건)의 스포일러가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제목은 저렇게 적었지만 저는 친밀한 관계의 최상위 기준으로 ‘가족’을 두는걸 정말 싫어합니다. 정상가족 우상화를 타도하자. 이 자식 뭐하자는거지? 싶으시겠죠. 하지만 저는… 동시에 언더그라운드의 아웃사이더들이 환경상 필연적으로 모여서 사는 이야기는 좋아합니다. 심지어 그것이 비혈연 관계일 때, 그들이 그 척박한 땅에서 최선을 다해 서로를 위해 사는 이야기는 더욱 좋아해요. 서로를 (너무도 여러가지 사회적 사유로 인해) 가족으로 칭하면 납득합니다.
뭐지? 적고보니 비슷한 걸 좋아하고 싫어한다는 것 같은데.
하지만, 하여튼, 다르다고요!! 우기면서 시작해봅니다.
싫다면서 얘네는 왜 가족이라고 하는가
우선 이 이야기를 하려면 로건 엔딩파트로 가야 합니다…
저는 로건을 보기만하면 무슨 신생아처럼 우는데요. 농담 아니고 진짜 분유 뺏긴 애처럼 웁니다.
특히 많이 우는 건 당연히 저의 1n년 최애캐가 눈을 감는 씬입니다. 그 친구는 안 그럴 것처럼 굴다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혹은 더 이상 그럴 필요도, 여력도 없는데) 뛰쳐나와서 아이들을 구하고 죽습니다.
슬프고 비참하지만 그야말로 소외된 영웅을 위한 찬가입니다. 그 씬의 배경에 깔린 모든 요소를 사랑합니다. 그가 어째서 모든 걸 잃고도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뛰쳐나왔는지, 그 근간엔 뭐가 있는지. 시청자인 저로서는 할말이 무궁무진 하겠지만, 로건은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 캐릭터라는 점이 좋습니다. 그럼에도 그 행위가 그를 ‘모든 걸 잃은 인간’으로 남겨두지 않으리란 점도 좋아합니다. 그는 아이들을 구했고, 아이들이 대신 살아갈 것입니다. 그렇게 뛰쳐나온 뒤 도덕적 만족같은 걸 느끼지 못할 인간이라는 점마저 사랑합니다. 그건 로건의 동기가 아니고, 동기일 수도 없어요. 이제 자신의 은사도 없고, 가족도 없고, 고향도 없고… 다만 할 수 있으니까 (본인 식으로 ‘거지같지만’) 그런 식으로 죽길 택했어요.
그렇게 죽어가는 로건이 마지막으로 마주한건 로라입니다. 자신의 유전자 일부를 베이스로 만들어졌고, 아이들 틈에서 가장 강한 아이이기도 했고, 그러므로 다음 세대의 희망이자 방벽이 될 수 있는 아이입니다.
앞부분에서 두 사람의 마찰을 생각하면 정말 끝내주는 씬이죠.
다만 의문스러운건, 여기서 로라가 로건을 아빠라고 부릅니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 제법 의미 깊은 씬이기는 하지만, 저는 제 취향을 압니다. 이런 걸 좋아할리가… 근데 제가 어땠냐고요? 겁나 울었습니다. 위만 봐도 아시겠지만 이미 슬픔에 절여져 있던 뇌이므로 생각이나 하고 울었는지 모릅니다만…정신이 들고보니 제가 대체 왜 로라의 “Daddy” 에서 그렇게 많이 울었는지 저로서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부분에서 위화감을 느껴도 괜찮았을텐데, 어쩐지 나와서 몇번을 생각해도 제게는 그 단어가 주는 울림이 기분나쁘지 않으면서도, 무척 적절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웃기게도 전 그 둘이 뭔 말을 나눴건 둘 다 너무도 보편적인 가족의, ‘그런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거라고 믿었거든요.
이렇게만 말하면 ‘아니, 어린 애가 자기와 동료들을 위해 싸우다 죽은 중년 남성에게 아빠라고 부를 수도 있지, 왜? 그냥 관용표현인가보지.’ 하는 사람도 있을 법한데. 뭐 제 얘기도 비슷하지만 더 얘기하고 싶은게 많으니까 떠들어볼게요.
여기 다다르기 전까지 로라와 로건이 어떤 관계였는지도 되짚어봐야겠죠. 당연하지만 둘은 결코 온당한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따지자면 찰스-로라의 관계가 그나마 바람직했을것이고, 가브리엘라-로라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이 이중 제일 적절했겠죠. 다른 누구에게 어떤 사람이었건, 어떤 짓을 했건, 어떤 삶을 살아왔건 그들은 로라에게 적절한 양육자이고 보호자였습니다. 온몸을 바쳐 지켜주고, 이끌어주고,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손가락으로 가리켜주는.
그런데 로건이랑 로라는 어떤가요? 이 둘은 처음부터 이미 망했습니다. 로건에게 로라는 언제나 시끄러운 / 걸리적 거리는 / 찰스가 미련하게 신경쓰는 / 어디서 불쾌하게 유출된 내 유전자로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애인데 좀 봐주면 어떠냐는 말같은 건 로건의 처지상 통하지도 않습니다. 로라는 로건에게 환장맞은 수화물이고, 말 안듣는 어린 인간입니다. 특유의 성정상 냅다 매정하게 애를 내다 버리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데리고 다니려고도 안했고요. 찰스에게 해가 되었다면? 그마저도 모를 일이었죠. 이미 찰스가 죽은 뒤엔, 그래요. 호수도 있고…
로건에게 찰스는 모두 사라지고 (데오퓨의, 모든 것이 세상을 밀고 지나가 인류가 박살난 미래를 기억하십니까? 그 반대편이 아무런 일없는 미래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로서는 이게 반대편입니다. 목숨을 걸고 노력할 수 있는 최후의 반대편에, 로건의 조용한 멸종이 있습니다.) 죽고 난 다음, 단 한명 남은 자신의 가족입니다. 찰스가 어떤 존재인지 구구절절 묻거나 설명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 없는 행위입니다. 긴 설명없이도 로건에게 찰스는 가족입니다. 어쩌면 환경상의 문제 때문에요. 로건은 기억상실 이후의 삶까지 고려하면 아무리 찰스보다 오래 살았다고 해볼래도 정신 연령상 찰스보다 어립니다. 그러니 그는 영화 내내 타인에게 찰스와 자신을 소개할때 슬플 정도로 자연스럽게… 그가 자신의 아버지고, 자신은 아들이라고 표명하죠. 그게 실제와 얼마나 다르건 본질적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그와 아주 유사합니다. 은사와 제자의 관계는 본래 그런 법이니까요. 그는 자신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었는데, 언제나 먼저 떠나갑니다.
몇 남지도 않은 과거의 뮤턴트가, 그의 아버지가, 그의 스승이, 그의 친구가 죽은 순간, 로건은 대체 어땠을까요?
그런 상태로 아이들의 ‘에덴’ 에 도달해 깨어났을 때, 그 전환은 얼마나 (서사상)현명하고 잔혹한가요? 모두가 자신들을 몰아내는 세상속에서 다음 세대가 피어나고 만다는 사실이?
그런거 신경쓰는 녀석이었으면 진작에 무너졌겠죠. 로건이 더욱 슬프고 괴로운 이유는 이제 모든 게 저물어가고 있기 때문도 있습니다. 삶도, 사랑도, 우정도요. 모든게 그리운데 그들은 돌아오지 않아요. 그리고 이 상실의 굴레는 한평생 로건 자신만의 것이었습니다. 영생을 사는 인간. 이제는 끝내 원치 않는 방식으로 죽어가는. 그렇게 로건이 보편의 죽음에 가까워지고야 맙니다.
나이 든 로건은 여전히 화가 많지만 그것도 찰스를 잃기 전까지의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등불도 꺼지고 나니 다시 한번 더 나이를 먹습니다. 무의미하게 화내지 않고, 다만 본능적으로 살아갑니다. 솔직하고, 무겁고, 무디게. 그게 그나마 이 둘 관계의 합의점이었을 겁니다. 더이상 잃을 게 없는 사람과, 만화책속 영웅에게 실낱같은 기대(어쩌면, 지난 인생을 보아 로라 개인으로서는 더이상 기대라곤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로라의 소중한 사람들은 로건을 보면서 꿈을 꿨잖아요. ‘당신이 아빠잖아요!’ 가브리엘라의 말도 안되는 절박한 외침처럼.)를 갖고 있었을 뿐인 어린 아이(후계자)의 이야기니까요.
하여튼 로건이 그 꼴로 구는 동안 로라도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나한테 이토록 무례하게 굴면서 내가 말같은 말을 하길 바라는 걸까?’ 스페인어로 마구 내뱉었던 그 순간에 했던 말처럼요. 이 영화의 좋은 점은 당연히 태어나서 자아를 가진 이상 애한테도 다 감정이 있고 생각이 있고 옳고 그름이 있다는 표현까지 해줬다는 점입니다. 로라는 체구만 작을 뿐 인간입니다. 로건의 막바지에 등장하는 모든 어린 아이들도, 어른이 더이상 즐거워하지 않는 일들에 즐거워할 때가 있을 뿐 모든 걸 판단하고 습득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가 그들의 최선의 성장을 이끌기 위해 그들로부터 잔혹한 일들을 분리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 것이지, 결코 어른이 더 잘 대처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경험이 사람을 노련하게 만들어도, 사건의 본질은 언제나 평범하니까요. 심지어 어른은 욕망하는 게 다변적이고, 아는게 쓸데없이 많아 일을 그르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지난 … 대충 몇십년간 정신적 성장을 이룩할 시간에 상처가 더 컸던 인간인 로건이나, 지금 이 순간 제 나름 최선의 방식으로 예리하고 날카로워진 로라나 노련함을 제외하고선 별 차이가 없고, 오히려 로라가 더 어른스러울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관계에서 전통적으로, 로건이 어떻게 아버지일 수가 있을까요? 로라가 로건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게 어울리는 일이기는 한가요? (앞에서 말했듯이 찰스 – 로건, 찰스 – 로라, 가브리엘라 – 로라랑은 천지차이잖아요.)
전 어울리는지는 차치하고 이 모든 게 언제나, 빈약한 우리의 언어속에서 가장 최선의 친애였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모든 친애가 사장된 세계에서, 단 하나의 친절을 우위에 두는 것
언어는 단순합니다. 짧고, 모자랍니다. 우리의 행동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석하고 되새기면서 깊이를 느끼지만, 크나큰 감정을 앞에 둔 모든 해석은 많은 경우 이미 늦었습니다. 사건은 지나쳤고 감정은 뒤늦게 따라옵니다. 나날이 전달할 수 있는 감정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제한된 것만 같죠. 이 순간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때를 놓치지 않으려면 꾸준히 교류해야하고, 꾸준히 교류하면서 감정은 변질될 수 있습니다. 변질되지 않는다면 도리어 시간이 모자랍니다. 우리는 언어와 행위만으로 감정을 완벽히 전달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는 반증이죠.
로라와 로건은 그 짧은 호칭을 부르던 순간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에덴으로 가야한다고 외치는 로라를 볼때마다 만화책을 중앙에 두고 다같이 둘러앉은 아이들이 떠오릅니다. 혹은 만화책을 펼쳐 보여주며 아이들에게 당부하는 가브리엘라, 그리고 그와 같은 간호사들도 떠오릅니다. ‘우린 가난할지언정 멍청하지 않다’고 말했던 가브리엘라의 말대로, 그들은 남들이 코웃음치는 방식을 택했을지언정 그 시선을 역이용해 아이들을 지킬 줄 알만큼 현명했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택이 주는 울림이 있어요. 그것밖에 답이 없었다는 사실이 주는 슬픔이 있죠. 실존하지 않는 주소에 대피소를 마련하고, 만화책속 엑스맨들 (심지어는 다들 이미 사냥당했거나 힘을 잃은) 을 통해 자신을 비춰보았을 아이들을 생각하게 되니까요. 로건을 만났을 때 애들이 얼마나 호기심 어리게 굴었는지 기억하시나요? 그 때는 정말 어린 애들 같았다는 것도? 이건 당사자보다 보는 사람이 느끼는 슬픔일테지만, 그래도 제가 왜 그렇게 3일장 치르듯 로건 처음 보고 돌아와 6시간 정도 울었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울지 않아요. 누군가는 인생이 고되어서 슬픔에 무뎌졌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저는 그들이 오로지 싸우는 데에 집중하며 희망을 갖고 있던 인물들이라는 데에 주목하고 싶어요. 이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어떤 슬픔이 기반에 깔려 있건 결국 행동하고 나아가는 동안 그걸 돌아볼 시간은 남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런 인생의 찰나성을 겪어보았거나, 알고 있는 사람들은 결국 찰나의 표현을 놓치지 않아요. 이 순간이 지나가면 후회가 될 수 있는 것들을 결코 최악이 되게끔 남겨두지 않습니다. 로라는 가브리엘라를 잃어보았고, 찰스도 찰나의 꿈같은 안정만 안겨주었다가 떠나갔습니다. 눈앞에, 그리 사랑스럽지만은 않았으나 모두가 동경하던 영웅이 있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로라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겠지만, 로건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그 선택이 어떤 것이었는지 압니다. 로건은 로라의 보호자나, 양육자와 다른 방식으로 로라에게 단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고. 모든 것이 완벽히 옳지도, 완벽히 틀리지도 않은 채로도 가장 많은 사람을 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오로지 그런 방식으로. 네가, 너희들이 꿈꿨던 방식으로, 혹은 다소 어긋난 방식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이렇게 있다.
그러므로 로건은 로라에게 있어서 자신의 길을 앞서 걸어갔던 사람입니다. 제 인생으로 증명합니다. 그렇기에 로라는 비로소 로건에게 감사할 수 있습니다. 로건을 미워하다가도, 자기자신의 얕은 기대감까지 미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시, 눈앞에 죽어가는 로건이 있습니다.
이런 방식의 친애를 도대체 어떻게 전달해야할까요?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전달했을까요?
이런 감정을 갖고 서로를 대하는 관계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엑스맨 보세요
뭔가… 할 말이 무척 많은데 저한테 마지막으로 할 말은 위의 저것 뿐인 것 같아요.
언어는 짧고, 전달할 수 있는건 한정되었고. 그쵸? 엑스맨 보세요. 로건 이후 나온 것들은… 말고요. (ㅈㅅ)
영화 ‘로건’의 정반대에서 로건이, 찰스가 세상을 구할 수 있었던 이야기. 데이즈 오브 퓨처패스트… 개인적으로 정말 잘만들었다고 생각하니 꼭 봐주세요. 엑스맨 1,2,3과 퍼스트클래스까지 보고서 보면 더욱 감명깊지만, 시간 없으시면 퍼스트클래스만 보셔도 됩니다.
사실 로건도 저 앞의 것을 다 보고 본 사람과 아닌 사람의 감상 격차가 엄청 크다고 생각해요. 데오퓨와 교차되는 감상들이 개인적으로 정말 많기도 했고… 그간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어떤 신념을 갖고 있는지 시청자가 알고 있는 인물들의 마지막은 언제나 사람을 조져놓는 편이죠. 그래도 전 로건이 여전히 가장 잘만든 엑스맨을 위한 찬가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저한테 있어서 로건에서 울버린은 죽었으니까 이후 어떤 영화에서도 찾지 말라. 이런 개 꼰대새끼같은 의견을 남기게 했지만…
볼때마다 너무 울어서 다시 볼 자신이 없는데 쓰다보니 또 보고 싶네요.
연말에 세상에 버림받은 듯이 울며 홈페이지에 글을 쓰는 사람을 보거든 저라고 생각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