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도 돌아온 ~잊기 전에 적어두는 읽은 작품~
사실 영화나 찍어먹은 웹소설까지하면 정말 많아지는데요. 그나마 기억에 남는 것들 위주로 모아보니 이번달은 만화네요. 심하진 않지만 스포 주의! 싫으시면 항목별로 보세요.
1.똑닮은 딸
제가 ‘내 인생을 망치러온 미친 여자가 필요하다’ 고 했더니 추천한 지인, 그냥 지나가다말고 네가 좋아할거라고 준 지인, 본줄 알고 말거는 지인까지 해서 안보면 안될 것 같아서 봤습니다.
막상 저는 길소명을 무척 좋아했는데요. 그것조차도 대략 30화를 넘어서며 여러모로 제 안의 트라우마를 지뢰밭 지나듯 밟고 지나며 달려나가는 작품의 심리묘사 덕에 정신을 못차리고 제가 어떻게 2부까지 왔는지 거의 기억이 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 너덜너덜해져서 51화에 주차해놓고 진행을 못하고 있어요. 미친 여자 보여준다며…누가 청소년기 고통 4d 전달해준댔어 (그게 그거인듯)
작품의 연출이나 스토리는 아주 웰메이드고요… 작가님이 지향하는 캐릭터의 인생 방향이 잔혹할지언정 캐릭터들 하나하나에게 부여된 입장은 나름 일방적이지 않아요. 선인은 선인, 악인은 악인. 이러지 않거든요. 대신 좀 더 서사를 명쾌하게 만들기 위해 갈등이 언제나 몇몇 인물들 간에서만 이루어지긴 해요. (환경이나 사회보단 말이에요) 청소년기에 아주 어울리는 방식이죠. 우리들만의 세계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악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몇몇이 가장 큰 대적자로 명확하게 제시되거든요. 스릴러답습니다.
제가 좀 … 정신을 차리면 이 작품을 소위 ‘덕질’하는 시점에서 볼 수 있겠죠…
… 트라우마에서 기어올라오면 똑바로 리뷰하겠습니다…
2.삼각창의 밖은 밤
제가 이 만화를 8권까지인가 읽고서 아니!!! 9권 언제나와! 10권 언제나와!! 하다가 정신차리니 나온거 사두고 벌써 몇년이 지났어요. 저는 원래 야마시타 토모코 작가를 정말 좋아해서 절판된 것들까지해서 집에 책이 있고요…
그러므로 별말 할 것 없이 무진장 잘봤습니다.
재밌는 점 : 5권 직전까지 충실하게 bl 텍스트 언저리를 맴돌면서 적극적으로 그 테이스트를 ㅠ 고스란히 갖다 쓰시는데요. (bl 그리던 분이라 유난히 어디서 뭔 클리셰 가져오신건지 너무 잘 알겠어서 비명지름) 5권 기점으로 제가 거의 눈 돌아서 이 작품에 몰입했던 기억이 나요. 5권부터 별안간 그간 맴돌던 ‘운명’이라는 소재가 갑자기 입체화되거든요.
더불어 히우라 에리카라는 인물을 통해 작가님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단순히 압도적이며 매력적인 여고생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자신의 죄를 지고 나아가는 죄인+청소년으로서의 극복과 성장+해방의 서사라는 점이 드러나 더욱 좋았습니다. 이 라인업은 위국일기로도 좀 더 따스하게 이어지고요. 위국일기도 다들 봐주세요.
비극으로 이어지긴 했지만 미카도씨(코스케 아님)와 선생님의 서사도 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 좋아했습니다. 미움을 끌어안고 살아 그것 없이는 자신이 온전하지 않으리라 믿는 것은 정말 사실적인 이야기기도 하고요… 한번 도망치면, 본래 뭘 사랑했고, 뭣때문에 도망치기로 했는지도 잊는 법이죠. (맨 처음엔, 정말 그냥 가족을 사랑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별개로! 저는 무카에가 정말 좋았습니다. 언제나 속물스러우려고 하지만 누구보다 가볍지 못한 인간의 박애에 가까운 다정함은 끝내주지 않나요?! 원래 한자와를 제일 좋아했는데 후반에 급부상해서 싫어할 수 없는 남자됨 ^ㅠㅋ사실 미카도도 좋아하고…히야카와…히우라…그냥 다 좋아하지 싶어요. 또 보고 싶어서! 또 보면 더 길게 주절거릴지도.
3.여학교의 별
별…적고보니 이거 호시쌤이죠? 호시(星)니까…어이없게 웃기네…
‘빠졌어, 너에게’부터 잘 읽고 있는 작가예요. 실없는 감성이 딱히 어디서…봤던 감성은 결코 아니지만 일상만화 보던 시절의 기분을 되새기기엔 좋았습니다. 공백과 정지된 컷의 활용을 정말 잘하는데, 그렇다고 이게 모두에게 먹히는 취향일지는 모르겠어요. 다소 어이없게만 느껴질 수도 있어요. 제 개그코드엔 지나치게 잘 맞았고 많이들 맞다고 생각하지만요…
그리고….고바야시쌤 정말 쓸데없이 잘생겼답니다…..
어떡하지 이것밖에 기억 안나네요… 포마드가 미인의 자존심이다 이런 소리하고 살았어서 그냥 고바야시. 계속 그러고 다녀라. 반깐하면 이 만화 안본다. 이런 생각이나 했네요.
포마드 머리가 정말 잘하는 만화. 여학교의 별. 추천드립니다.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4.봄의 저주
죽은 여동생의 남자친구와 여러가지 사정으로 사귀게 된 주인공. 이 나오는 만화입니다. 단편인게 정말 아쉬운 만화예요. 기대한 것보다 드라마틱하고, 드라마틱한 대신 이야기가 독자와 인물 양쪽에 아주 다정하지만은 않습니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은 아님)
기왕 두 사람의 이야기인 김에 좀 더 두사람에게 편의적으로, 서로 사랑해도 되는 근거를 제시해도 좋을텐데 그러지 않거든요. 죄는 죄고, 산사람은 산사람,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사랑해선 안된다고 생각하면, 그건 정말 그런 겁니다. 그런 결단이 엿보여서 정말 좋아요. 좀 더 고민없이 마음이 편해지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이야기가 인물들에게 친절하다고 꼭 좋은 이야기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런 면에서 이 이야기는 선을 아주 잘 지킨 만화예요. 그 와중에도 재밌으니까요.
주인공이 얼렁뚱땅 웃음으로 무마하려고 드는 생활력 넘치는 사람인데, 남주인공에겐 맨처음 너무도 차갑고 음울한 인간으로 보였다는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런 면에 하필 사랑에 빠진 것도요. 연정은 본인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바랐던, 어떠한 위반위에 있는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