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주시자. 이 홈페이지의 주인장이자, 이미 죽은 우주를 헤매며 파도와 같이 몰아치는 미디어속을 헤엄치는 한 마리의 타죽은 연어같은 존재입니다. 근래에는 접한 미디어라고 할 만한 것이 협소한 삶을 산 데다 웹소설만 주구장창 읽어버렸네요.
그러므로 오늘은 저의 근황보고를 합니다. 무려 1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니까요.
물론 이 홈페이지는 언제까지나 (그러니까 제가 ssl 자격을 갱신하고, 또 호스팅을 연장하며 세상의 무수한 블로그 플랫폼을 신포도 취급하는 동안) 저와 여러분을 기다리는 고향땅이 되어줄 것입니다. 이 홈페이지가 원하든 말든 간에요. 싫다고? 한낱 CMS 구현 덩어리가 제게 뭘 어쩔거란 말입니까?
애니웨이.
1.이 황량한 시대에 무수한 인풋을 하려 한다는 것
오타쿠 생활의 각박함을 논할 때가 다가왔습니다.
저는 살면서 영화를 본다 하면 연간 아무리 못해도 백편 이상은 기본으로 보는 녀석이었는데, 근래 정체 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제가 최근 본 것이라 하면은 … 세상에 배척당할까봐 말하기 뭣한 것과, 말해도 되지만 어쩐지 ‘네가 어쩌다?’ 싶은 남정네의 사이다 파티, 혹은 이미 봤던 것들 또보기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걸 봤냐면요. 무려 원피스를 봤거든요.
원피스. 제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더빙을 진행중인 팀에서 원피스가 이번 메인 작품이라 안 읽을 수가 없었어요. 다시 보니 초반부의 모든 전개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원피스는 일정한 텐션속에 쉽게 읽히는 작품이에요. 그런데 동시에 아주 감동적이죠. 똑똑하면서도 감각적이고 즐겁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이 있죠. ‘배운다’ 니?
이런 끔찍한 상황이? 공부하려고 펼친 것이 아닌데, ‘배운다’니!
그렇습니다. 그것이 근래 저의 삶입니다. 원래도 어느 정도 모든 작품을 인풋의 개념으로 읽거나 보아왔지만, 요즘 들어서는 일명 ‘작품 살해 머신’ ‘인풋기계’ ‘아무런 감정없는 책 씹는 양’ 모드를 끄기 어려워졌습니다. 끄고 있을 때도 종종 있지만 보고 난 뒤에는 등 뒤에서 누군가 속삭이죠.
이거 재밌다. 인기 많지. 그럼 어떤 이유로 사람들이 좋아했을 거라고 생각해? 꺄악!
저는 그 물음에 비명을 지르고 맙니다. 아무래도 여기에는 무수한 깊은 사정이 있겠지만, 저의 진정한 목적을 제하고 말하자면… 이 홈페이지로부터 잠시 떨어져 나갔던 것과 같은 이유로, 제가 이토록 잔혹한 삶에 던져져 있기 때문입니다. 혹독한 일상은 두시간, 세시간 이상의 몰입을 허용하지 않는 업무량을 제게 제시하고 있어요. 대가를 먹고 자란 자본이 제곁에 사신처럼 떠 있습니다. 아, 자본주의! 그가 내민 손을 꼭 쥐고 있자면, 이 모든 돈을 좀 더 살살 녹고 빠르게 타오르는 것에 소비하고 싶어진답니다.
그렇습니다. 늘 그래왔듯 십덕질이 좀 더 깊이, 제 심장에 자리잡았습니다. 단 한장르, 심지어 아무도 모르는 것을 사랑한다는 것. 그것이 제 삶이었습니다. 거기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지만(오히려 제법 즐거웠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몇년 이하의 것들이 조금 더 궁금해지긴 했네요.
오타쿠 여러분, 당신들은 덕질하면서 연간 얼마나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나요? 덕질과 동시에 일을 하고, 또 취미용 창작을 하고, 또 인간관계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세계를 접하고 계신가요?
아무래도 그게 최근들어 제 이슈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 질문을 해제해서.
어째서 나는 한명인가? 십덕질과 업무와 운동과 음악감상, 영화감상, 책 천권 읽기가 동시에 가능한 놈들은 인간인가? 아니라면 어째서 우리는 한 인류로 묶이는가?
그런 한량날강도같은 질문들이요. 저것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가 조용히 밀쳐두길 반복하고 있습니다. 아아, 삶이란. 그저 살아서 즐거움을 찾고 즐거움을 위한 가챠를 돌리는 과정인 것이겠지요.
2.
하여간에 제발 작품에서 벗어나서, 우리 제발 글얘기를 그만하고, 정말 글얘기를 하지 않고, 글을 쓰면서도 글에서 벗어나서 이야기를 해봅시다. (나는 정말 글 생각을 하지않고…글생각을 하지 않고…)
뭐가 있을까요. 그래요. 하나 있네요.
요즘 저는 제 사라진 삼두박근을 찾고 있습니다.
그 친구가 말이죠. 제 곁에 작년 내내 정말 아름답게 있던데다, 일명 ‘딱딱한 망고’ 로 발전했었다는 끝내주는 소식도 적어둬야 겠군요. 제가 그 녀석을 위해서 푸쉬업을 백번하고, 덤벨도 들고, 하여튼 정말 사랑을 퍼부었었습니다.
이 일상이 저와 그를 갈라놓기 전까지… 사랑을 스스로 져버리며 안타까워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바로 저의 것이라고 해야겠지요. 여러분은 서서히 사라지는 근육이란 걸 아십니까? 이게, 막 단번에 사라지지 않아요. 서서히, 거기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수 있었는데 네가 날 버린 거란듯이, 그렇게 사라져요.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겁나 진부하지만 이거만한 표현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덤벨은 애매하게 지속했더니 얘가 ‘자기야, 걱정마. 나 여기 있어.’ 하고 저한테 손바닥 아래로 따스함을 전달해주기도 하거든요? 근데 아무리 더듬어봐도 옛날에 알던 그이가 아닌 겁니다.
저희 관계는 식었어요. 끝났습니다. 근데 전 그이가 그리워요. 돌아와줬으면 하는데 저도 그를 찾을 자격이 없다고 느껴요. 권태기와도 다르죠. 그냥 제가 쌩 날강도인거니까… 날 떠나지 않길 바랄 뿐이니까…
뭔 개소리냐 싶으시겠지만 제 상태가 그렇습니다.
근육을 찾기 위해, 다음주부터는 이 지독한 ‘일만보걷기’ 라는 유산소 이상으로 나아가, 푸쉬업을 하고 싶습니다.
그에게 다가가 외치고 싶어요. ‘자기야! 나야, 나 아직 널 잊지 않았어. 그러니까 돌아와서 당장 내 팔뚝에 붙도록 해. 자리를 데워놨으니까…’ 라고요.
그러면 절 돌아봐줄까요. 아아, 머슬, 아아, 허슬. 아아, 덤벨.
*
이것은 과연 근황인가.
더 길게 떠들 수 있지만,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두고 싶었을 뿐이니 줄이겠습니다.
이곳이 죽은 별이 아니며, 내가 알고 있는 당신들은 회원가입을 해서 글을 써도 되고,
여튼간에. 어딘가로 외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뜻에서 떠벌거립니다. 뭔 개소리든간에, 제 심장의 개소리니까요.
다들 건강하세요!
조만간 좀 더 멀쩡한 글로 뵐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안 기대하고 계시면 옵니다.
+ 최근 먹은 타코집이 끝장나게 맛있었는데, 그걸 알려드릴 수가 없네요. 참. 나중의 제가 보라고 적어둡니다. 또 가렴, 주시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