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게이머를 만든다…(백신 맞으세요)

곧 2023년이네요. 그놈의 메리크리스마스도 지났고, 정신을 차리니 곧 나이 먹는 날만 남았습니다.

저는 이브까지는 이리저리 사람 만나고 신났었는데, 그 이후로 죽어있다가 이제야 기어와 앉아있네요.

늘 있는 일이지만 저는 대충 4개월에 한번 정도는 앓느라 드러눕곤 합니다. 그건 무척 여러가지 이유를 동반하지만, 재밌는 건 매번 정말 이유가 다르다는 겁니다…(다년간의 노력끝에 얄팍하고 연약한 면역상태로도 어지간한 유행병은 다 피해갑니다. 적어도 감기는 안걸린다는 겁니다. 이해하면 무서운 이야기.) 그런데 이번에는 좀 예측했어요.

죽도록 코로나를 피해다닌 저… 코로나 한번 걸리고 정말 온갖 고생을 했다보니 죽어도 이 고생은 또 못한다. 는 마음으로 백신을 맞았습니다.

이번 백신은 변이 대응도 된다고 하고, 비교적 다른 사람들은 맞고 난 뒤에도 큰 고생을 하지 않는 눈치더라고요. 병자 입장에선 제가 걸려도 끝장이지만 저같은 상황에서 백신을 못 맞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되도록 집단면역에 기여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그러니까 건강한 분, 공짜인 김에 제발 맞으십시오. 선생님 하나가 안 걸리면 걸려서 끝장날 사람이 삽니다.)

그거랑 별개로, 안 아프다더니 저는 진짜 아팠습니다.

사실 내가 사라져야할 바이러스인가? 얘네가 지금 날 없애고 있나? 내 항체… 사실 내 몸을 차지할 새 생명인가? 이러고. 아무래도 백신 부작용으로 인한 발열과 더불어 제 지병상 열이 나거나 오한이 오면 바로 반응이 오기 때문에… 끝내주는 경험이었어요. 물론 그래서 진짜로 걸리면 보이지 않는 고문이 되는 셈이 되니까 이건 체험판이었죠. 실제로는 몸에 영구적으로 해가 간 건 없고 제가 피곤하고 아프기만 했을 뿐이니 아주 잘한 건데요. 저는 비몽사몽 일력을 넘기면서 쌍욕이나 하고 있습니다. 이젠 어지간해선 이런 식의 어쩔 수 없는, 제가 의도한 일이 아니고는 반년~8개월에 한번 정도만 아프지 않을까요? 이러고.

여튼 그래서 크리스마스 이후로 내리 끙끙대고 있던 제가 가장 열심히 한 건…

무기미도였습니다.


솔직히 무기미도 얘기 하루 종일 떠들 수 있는 사람인데, 이게 대체로 긴 글로 적으면 그냥 길고 길게 지가 좋아하는 캐릭터에 꽂혀서 헛소리만 늘어놓게 되거든요. 리뷰를 적다가도 아직도 중얼중얼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ex. 그런데 역시 켈시는 실장되어야 하지 않나, 조야가 집에 안온다 말이 안되는 것 같다, 나이팅게일이… 중얼중얼) 광인같은 시기이기 때문에 주제를 정해야 그나마 쓸 수 있을듯해 미루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게임도 못하는 놈이 게임을 하는 이야기를 주절거릴게요.

저는 진짜 게임을 못하는데 어쩌다 이렇게 게임을 하고 있을까요.

사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게임은 리듬게임말고는 뭐 해본게 없고 다 너무 어렵다. 뭘 잘해야 스토리를 보고 뭘 느낄 시간이 있지 한 퀘스트 5번 실패하면 인생이 괴로워진다. 이러고 살았었어요.

이런저런 걸 시도하다가 공포게임을 해봤습니다. 그나마 좋아하는 장르라서 괜찮을 줄 알았어요. 저는 스트레스 풀이로 공포영화를 붙들고 살았다보니 무섭지는 않았는데, 문제는 길찾아서 도주하는 구간이 늘 나오더라고요. 저는 게임에선 특히 길을 못찾아서 ……. 방금 내가 좌회전을 한건지 우회전을 한건지, 이게 아까 온 방인지 가야했던 방인지 출구는 어디인지 물음표만 띄우고 있다가 끈 적이 있습니다. 끌 때 쯤엔 괴물이랑 조금 친해진 기분이었어요. 그 친구도 제가 떠나는 게 아쉬웠을 듯한 느낌. 그렇게 오래 놀아준 플레이어가 나말고 또 있었을까… 여튼 길치가 3D게임에서 더 심한 것 같은데 모르겠네요. 요즘엔 좀 나았을까요?

아마 낫기야 했을텐데, 그건 제가 악의 손(지인)에 이끌려 사이퍼즈를 했기 때문일 겁니다. 사이퍼즈를 좋아한 이유는… 절 담근 그분도 말씀하셨지만 더블크로스 (TRPG) 같은거 좋아하는 인간은 대체로 좋아할 느낌이거든요. 세계관의 이능력자 코드에 그때그때 전략을 정해서 대응해야하는 방식이나. 물론 이쪽은 순발력이나 컨트롤같은게 더 필요하긴 하지만! 그리고 랜덤파티로 들어가면 같은 팀에 미친놈들이 종종 있지만! (저도 그들의 미친놈이었습니다) 그래도 이펙트가 화려하고 전략이 중요하다는 건 둘이 비슷해요.

결국 저는 한번 할때 너무 오래해야 하고 열심히 하면서 기운도 뺏기길래… 그런 게임은 일단 치우고 보는 습성상 사이퍼즈를 열심히 하다가 접어다 밀어놨는데요. 이어서 좀 더 편하게 켜서 하다가 그만둘 수 있는 방식의 전략게임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액션도 있어야하고요. 타격감 없으면 재미가 없더라고요. 더블크로스에서 그냥 이펙트 이름 하나씩 언급만 해도 되는데 굳이 콤보명 많이 지어두는 것처럼… 사람이 가오가 없으면 게임을 안하게 되지 않나요.

그러다 데드셀을 80시간 정도 했습니다.


게임을 안했다는 건 내숭같아요. 그 사이 뭐 로보토미 코퍼레이션도 해보고… 여튼 싱글 플레이어 2D게임으로 눈을 돌렸던 것 같습니다. (기억 안나요)

정신 차리니 시간이 그랬어서 어쩌다 그렇게 했냐… 이런건 기억 안나고요. 딱히 뭐 시간이 많은 시기도 아니었고 그때쯤 학기 21학점 들었던 것 같은데 뭔 생각이었는지. 아니면 21학점이 저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성적은 멀쩡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그냥 많이 재밌었거나 많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주변에 저보다 게임 잘하는 사람들에게 공략을 뜯어먹고 같이 고통받게 하려고 데드셀해달라고 50번 정도 말했는데 다들 그런거 안한다… 하고 씹었어요. 어렵다고들 그러는데 제가 그들보다 게임을 못하니까 말이 안 되죠… 아무리 봐도 잘할 것 같은데… 진짜 재밌는데… 한번 맛보면 이 맛을 못잊을 건데… 사이비가 이런 심정이겠구나 싶고 억울하고. 물론 커스텀모드 안쓰고 보스를 깬 저는 2회차 보스를 깨기엔 저 자신이 많이 약한 것 같아서 내공을 쌓고 있습니다. (접어뒀습니다)

데드셀도 무기나 이펙트 조합이 중요한 게임인데요. 무기나 스킬 종류가 순 랜덤으로 제공됩니다. 상점에서도요. 커스텀모드를 쓰면 쓰잘머리없는(ex. 빌어먹을 명사수궁) 무기가 제외되지만 저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진행하다가 나중엔 자존심에 모드를 쓰지 않았어요. 전 잘 하지도 못하면서 자존심도 센 놈입니다. 문제가 아주 많아요… 하지만 모든 무기류에 적응해서 그때그때 조합해 쓴다는 건 마조히스트로서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답니다.

인생에선 이런 선택 한번 잘못하면 말아먹는데 데드셀도 로그라이크라 한번 말아먹어서 죽으면 진짜 모든걸 잃고 맨앞에서부터 시작하거든요. 쓰다보니까 다들 왜 안했는지 알 것 같지만, 이런 걸 좋아하는 분은 한번 해보세요. 2D 횡스크롤 게임이기때문에 저같은 길치가 길을 헤맬 일이 원천 차단되어있는 아주 친절한 게임이기도 했고요. 물론 순발력도 중요하며… 전 이 게임을 하면서 몹의 기믹이나 모션에 맞춰서 패링을 한다는게 개소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 동안은 진짜 뵈는 것도 없고 내가 다음에 뭘 쏠지도 기억 안나는데 쟤가 언제 뭘 하려는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 하는 심정이었거든요. 근데 어느날 패링을 착착 해내면서 깨달았습니다.

모든 게임은… 노트 없는 리듬게임이었던 것입니다…! 이걸 얼마나 죽었는지 기억 안나는 시점에 깨달았어요. 무슨 무협소설도 아니고 맞고 죽으면서 배웠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무기미도.

무기미도하면서 ‘내가 데드셀 그렇게 열심히 안했으면 이것도 하다가 접었겠지’ 싶은 구간이 종종 있었습니다. 아닐 수도 있긴 한데, 저는 6챕 이후로 온몸의 수분이 빠져나간 상태였어서 뒷부분에서 흑흑거리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깰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면 안했을 것 같거든요. 데드셀에서 너무 죽어봐서 다수의 몹 모션이나… 순서나… 그런 걸 외우는 건 다행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플레이할수록 이 게임이 잘됐으면 싶기는 한데, 완벽해서라고는 못하겠고 다만 재밌기는 하고… 그냥 제 입맛 맞고 아무도 안시켰는데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게임이 오랜만이라서 그런 것도 있어요. 무기미도가 어려워질수록 느끼는 거지만, 저는 정말 순발력으로 떼워야하는 부분과 더불어 적절한 전략을 어느정도 유지하는 밸런스의 게임이 정말 좋아요.

이 게임은 아직까지는 적절한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꿈 이벤트는 쉬어가는 용이기도 했고, 아무래도 그간 올라간 난이도를 완화하는 용도같기도 했어요. 새로운 유저를 받아들이려던 게 아니었을까?! 싶었네요. 덕분에 저는 정신차리니 할게 없어졌습니다. (제 책임입니다.)

전에 써놨듯이 저는 이미 하드컨텐츠 (디스의 암영이나… 하여튼 75렙 이상 권장의 구간들)를 제외한 스토리파트나 이벤트는 다 밀어둔 상태였습니다. 이번에 ‘아름다운 꿈’ 이벤트 열리면서 그거나 깨자 하고 붙들고 있다가 하나 못깼던 디스의 암영 스테이지 (엉뚱하게 늘 그렇듯이, 저는 늘 보스 스테이지는 어느샌가 깨놓고 앞부분으로 돌아와서 그놈의 s클리어 하려다가 “야 이거 왜 안깨지냐” 를 반복하는 타입이에요. 스토리에서도 레벨도 안맞는 보스는 빨리 밀고 앞부분에서 끙끙 대는 편이었죠. 아무래도 늘 미묘하게 딜이 부족했으니 캐릭터 레벨을 안 맞춰놓고 가서 그런 것 같아요…당연한 소리 아냐 이거)도 마저 s클리어 하고, 기억의 폭풍도 가서 마저 다 깨고 돌아와서 이벤트도 끝내놓고…고위험 밀고… 이래놓고 마침 몸이 나았어요.

그리고 앉아서 책을 뒤지게 읽고… 드러누워서 밀린 드라마 보려다가 씩 오브 잇이나 다 보고… 나름 늘어지게 놀았다고 생각하는데 대부분은 갓태어난 송아지처럼 졸면서 아팠습니다.

이 긴 이야기의 결말은 이제 어디가서 게임 안한다는 소리를 못하게 되었다. 예요. 그리고 저는 언제나 힘들고 아플 때마다 게임을 열심히 했고, 거기 영원히 빠져 있을 성격이 아닌 이상 게임은 정말 적절한 완충제였다는 것입니다. 혹사하지 않으면 쉬지 못하는 사람에게 가장 적절한 노동이었어요. 머리를 쓰면 잠이 오니까요.

비록 대충 2년쯤 걸리긴 했지만 이젠 엄청난 구제불능을 넘어서서 혼자서 적당한 게임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니, 혹시 게임을 해보고 싶은데 내가 너무 못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아직 선생님을 위한 게임을 못 찾으신게 아닐까. 그러니 안 맞으면 억지로 하지 마시고 이것저것 해보세요. 스팀은 특히 플레이시간 짧으면 환불되니까요. (악용하진 마시고요.) 그 외에도 체험판 나오는 녀석들도 많고.

파티형 게임이 아닌이상 선생님이 버튼을 잘못 눌러 적진 앞에서 춤을 추다 죽는다고 해도 욕하지 않잖아요. 아니면, 꼭 승리가 중요한 게임이 아니면 그런 실수는 매번 웃기기도 하고…

무기미도 해도 좋고, 스팀/스위치/모바일버전도 있는 데드셀을 하셔도 좋고…

멋진 말 하려고 했는데 또 이러고 있네… 광고판 들고 멋지게 퇴장해봅니다. 무기미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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