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레트로란?
아까비님의 CoC시나리오로, 영화 미드소마와 서던리치 : 불멸의 땅의 영향을 받아 작성하셨다고 해요. (주소는 여기 https://akkabi.postype.com/post/4264649) 저는 때마침 이 두 영화를 모두 보았고, 그중 서던리치를 제 취향의 척추처럼 여기는 사람이라 ‘이 시나리오를 반드시 좋아하는 플레이어들을 데리고 가겠다’는 의지를 대략 반년 전부터 불태워왔습니다… 그 좋아하는 플레이어들이란 장편 캠페인 팀 기묘한 현대의 초상들, 일명 기현상 팀의 플레이어들입니다.
기현상이란?
어느덧 거의 1년하고도 4개월 가량에 가까운 시간동안 함께한 CoC위주 장편 캠페인 팀입니다. 중간중간 타룰로도 이야기를 이어나갔었지만 각설하고, 하여간에 캐릭터들의 서사는 깊어진데다 플레이어들의 플레이 방식이 탄탄하고 능숙한 것이 최고의 장점인 팀인데요. 중간중간 하차와 충원을 반복하여, 현재 캐릭터는 이렇게 있습니다. 당연히 그냥 제 1인 해석들 범벅입니다 ㅎ…
- PMC 소속이며, 팀의 전투를 담당하면서도 / 자기가 속물이라고 생각하는 위악적 선인 A. 선악의 측면에서 갈등하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과 감정의 차이로 인해 스불재를 겪고는 합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이 팀을 지키려는 데에 진심이죠.
- 신화생물 증거자료로 퓰리처 상을 노리며 먹고 살기 위해 나X위키를 참조해 찌라시를 쓰기도 하는, 그럼에도 용감하고 누구보다 기자정신을 잘 지키는 / 동시에 아무렇지 않게 희생적일 수 있는 기자 B. 엄청난 일도 해야한다면 저지릅니다.
- 겉보기에 평범한 너드지만 맥가이버 담당입니다. “그런건 프로그래머가 하는거 아니거든요?!” 하며 해킹도 할줄 알고, 동시에 후로탐사자들만 모인 이곳에서 흔들리는 상식을 지키려고 애쓰고 / 그게 자신의 신념인 C. 제일 어른스러운데 본인은 모를듯.
- 공무원인데 옛날부터 환경운동에 아주 뼈를 갈고 살았으며 / 그런 애매한 입장을 재활용해 이리저리 쓰고 있는 겁없는 인간이나… (목숨은 반쯤 내놓고 삽니다.) 실상은 연설과 직장생활을 제외한 모든 대화와 행동이 뚝딱거리는 무뚝뚝 D. < 얘가 제 캐입니다...
요약하자면 형태는 서로 많이 다르지만 다들 근본적으로는 선인 카테고리에 들어갑니다.
저는 세레트로에 이 친구들을 보내고 미드소마를 밑바탕을 깔아둔 뒤… “서던리치” 해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뭘 했는가
일단 마스터는 저였기 때문에 세션이 재밌었는지는 차치하고… (당연히 재밌었지만 척추뼈를 갈은 탓에 제 덕분인지는 저도 모르겠는 것이죠. 너무 제 취향을 갈아넣어서 좋아하실지 두려웠습니다…)
후담의 주 내용은 내가 뭘 개변했으며, 플레이어캐들이 얼마나 오졌는가 가 중점이 되겠습니다.
이하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 스포, 시나리오 스포 가리지 않습니다. 싫으면 도망치세요.
다시 말하지만 서던리치는 제 취향의 척추입니다… 잘 만들었느냐는 차치하고 일단 그 특유의 슴슴하면서도 네 맛도 내 맛도 아니고 오로지 제 맛인, 그러면서도 끔찍하고 아릅답다는 점을 무척 좋아합니다. 끔찍한 것을 상상하고 그걸 거기까지 아름답게 구현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으니까요. 전 그냥 끔찍한 것도 좋아하지만, 그게 현실에 상처입히는 내용만 아니라면 (딱 서던리치처럼 어떤 동떨어진 신비 그 자체일 때) 아주 아름답게 묘사해도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친구들을 데리고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일단 지금 이 상황이 아주 끔찍하지만, 멀리서 보면 괴이쩍고 예쁘지 않을까? 사실 이렇게 살아도 좀 괜찮지 않나? (언젠가 나무가 되거나 포토톡이 되어 화형당할지 모르지만)”
시나리오의 초반부터 개변이 들어갔습니다.
저는 미드소마와 서던리치의 공통점은 우선 인물들이 본인이 어디서 뭘했는지 잘 기억을 못할 때가 있고, 가끔은 의도치 않게 ‘지금 무진장 행복하다’고 느낀다는 부분에 있다고 생각해서 … 우선 친구들이 평소에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잃기 싫어하는 요소가 뭔지 플레이어 분들께 받아 왔습니다. CoC의 팁 있지 않나요.
일단 아끼는 걸 뺏었다가 망가뜨려서 돌려주라고…
(안그랬습니다)
- A는 자신의 은인과 동기, 의지를 잃기 싫어합니다. > 그래서 시작부터 여기는 너무 안전하고 풍족해서, 굳이 그렇게 열심히 (누군가 다칠세라) 긴장한 채로 안 살아도 되는 것 같다고, 은인인 관장님도 데려와서 같이 지내도 될 것 같다고 해줬습니다. 자신의 의지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쓰면 됩니다. 안 먹고 싶으면 굶고, 일하기 싫으면 자고… (우리 A는 상당히 부지런합니다…)
- B는 사람들,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아합니다. > 이곳에선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습니다. 모두가 행복합니다. 그토록 열심히 구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라고 메모해두었네요. B는 언제나 너무도 당연하게 누군가를 위해 자기 자신을 깎아내는 인간이라서 (그러다 아무도 눈치 못채는 순간 망가지기도 하고요. 이미 그런 부분이 조금 있는지도) 그런 부분을 줬어요.
- C는 도덕적 판단능력, 그러한 의지와 날카로운 기준이 스스로에게 중요해요. 정확히는 그런 자신의 … ‘뭔가 이상하다’ ‘이건 아니다’ 하고 느낄 수 있는 감각 자체를 잃는게 두려운 편입니다. > 모든 것이 정명한 세상이라는 것은 실존합니다. 지금만큼 세상을 믿고 싶었던, 믿을 수 있던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메모해두었어요. 와! 고민을 안할 수 있는 유토피아면 고민할 수 있는 감각 같은 건 필요없습니다.
그래서 도입부부터 가장 많이 나온 나레이션은 너무나 건강하고 행복하며… 여긴 끝내주는 섬이고… 나갈 필요가 없고… 나는 여기서 살고 싶고… 뭐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재밌는 것이 스스로의 관념과 감각이 중요한 친구인 C가 제일 먼저 이 미친 상황에서 정신을 차렸습니다. 왜냐? 바로 옆에 얼마 전에 정확히 그런 윤리적 감각을 이유로 싸웠던 D가 같이 여행을 왔다고 앉아있는데 너무 이상하잖아요. 시나리오 요소상 뭔가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마약같은 음식을 먹고 이렇게 됐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신적인게 가장 중요한 친구가 먼저 이겨낸게 정말 딱이라고 생각했어요… 참고로 제 캐릭터 D는 옆에서 멀뚱하게, 왠지 역겨운 기분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얘가 원하는 것도 ‘더 이상 타인을 잃지 않는 삶’ 이었는데요… 이건 나중에 얘기하고.
그리고 A가 ㅠ ㅠ 가장 늦게 정신을 차렸습니다. B는 지능 판정으로 여기 같이 왔던 사람이 있다는 걸 떠올려서 위화감을 느꼈는데 (이것도 B의 소망이랑 충돌하죠. 아니, 벌써 사라진 사람이 있어?) 저희 팀 가부장의 꿈을 꾸는… (진짜 가부장은 아니고요…) A는 무슨 스스로의 강력한 쉬고싶다는 의지가 발현된 것마냥 지능판정도 실패했습니다… 저희팀 밈이 있어요. 행복해질 수 없는 A라고… A는 환상에 취해 이렇게 행복하고 충족되고 건강하고 그런 상태로 하루를 더 있었습니다.
너무 좋아하는 씬 : A랑 B는 평소에 A가 연장자를 자처하는 (둘이 1년 차입니다만) 유사 남매사이인데요. 그럴때 맘껏 자유분방하게 다니곤 하던 B가 정신좀 차려보라고 밥먹기 귀찮다는 A한테 밥을 떠먹여줬습니다… ㅠ ㅠ (아이고 한입만 더먹자, 아이고 잘한다.) 어른 제국의 역습 보셨나요, 거기서 그… “어쩌라고, 과자 먹을거야.” 하는 신형만이 바로 우리 A같았습니다… 우리 B는 안그래도 짱구같은데 정말 급하게 어른스러워진 짱구였습니다… (너무 웃기고 좋았습니다.)
여차저차 진행하면서 개변했던 요소들은 크게 이렇습니다. (사실 메모해둔것 이상으로 사건이 이것저것 터져서 대부분의 기괴한 요소들은 걍 제가 2초 챌린지로 만들었습니다. 뼈만 남은 사슴, 면류관처럼 바닥에 둥글게 얽힌 시체들, 뿔에 꽃이 핀 사슴(이건 영화에도 나오죠 ^-^ 디지게 좋아했습니다), 말하는 당근, 갑자기 꽃으로 변하는 모든 것들, 목질화된 인간 등등.)
- 애들이 너무 잘 돌아다니거나 해서 / 정보를 차단하고 고립시키고 싶을 때마다 태양을 사라지게 했습니다. 신화생물이 스노우볼 들여다보다가 조명 켜두는거 깜빡하고 천을 덮었다는 이미지.
- 도서관에서 얻은 책은 마도서와 기본정보를 제외하고 전부 플레이어 자신의 머릿속을 레퍼런스 삼아 나오게 했는데요 (전공서, 일기장, 절판된 위시도서) 자료조사의 한계를 두고 싶어서 키워드를 바로 주기 전까지는 대체로 ‘원하는 것이 뭔지 알거나’ ‘이미 알고 있는 것’ 만 얻을 수 있었어요. 갖고 나왔을 때 마도서 빼고 전부다 풀이 자라고 나방이 되어 날아가고 난리가 났습니다.
- 비슷한 경우로 정보를 줄 수 없거나, 내보내면 안될 때마다 문손잡이를 사슴 발굽으로 만들고 거실에 말하는 인간모양 나무를 두고 했습니다.
- 어디 들어갈 때마다 꾸준히 pc 개인사와 관련된 모브의 대사를 환각 / 환청으로 넣었습니다. 없던 기억이 생겨나고 막. (제 욕심)
- 우리 친구들이 숙소 식당에 불을 질러버려서 숲에서 야숙시켰습니다. 원래 하려던 거긴 했는데, 불침번 서면서 한명씩 돌아가며 끔찍한 환상을 봤습니다. 10분짜리 진행이면 시간은 시나리오 내부에서 2~3시간 흘렀습니다. (제 욕심2)
저 요소마다 애들 반응이 참 좋았어요.
우리 B같은 경우는 혼자 촌장의 집에서 온갖 공포영화적인 요소들이 자신에게 구해줘! 도와줘! 죽을 것 같아! 너 아니면 안돼! 라고 외칠 때마다 망설이는 기색없이 음, 들으면 안되겠다! 하고 씹어버렸는데요. 그렇게 쿨하게 창문으로 제 캐릭터 D를 데려와서 같이 조사한 다음 다시금 그런 것이 나오니 창문을 깨고 탈출합니다. 아주 모범적인 공포영화 클리셰 대처 교본이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비슷한 경우로 야숙을 하면서 마주한 환각, 환청에는 비명을 지릅니다. 오지마, 저리가, 이렇게요. 저는 이게 B를 정말 잘 보여주는 대처였다고 생각해요. 언제나 너무 멀쩡해보이는 순간에 B의 내면에는 스트레스가 쌓이고, B조차도 언제나 인간적으로 괴로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으니 일단 미뤄두기를 잘하는 캐릭터일 뿐이고, 기회가 되면 (일이 해결됐거나, 정말 ‘끝났’거나) 느닷없이 금이 간 틈으로 광기나 불안이 새어나오는거죠.
저희탁의 마법사 역할이 있다면 B인데 (주문 익힌 것도 많고, 이번에도 마도서 얻어감) 제일 광기에 가깝다는 점이 매번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놓고 저는 거실에 B가 버리고 간(?) 크리처가 “B는 왜저렇게 늘 제정신이야?” 하고 울부짖는 씬을 만들었지만, 그건 역시나 남의 시선이다 싶어요.
사실 별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씬은 C, D 가 그나마 숲에 익숙하다고 같이 조사하러간 씬이었어요. 두 사람이 조류관찰 동호회 (ㅋㅋ) (아휴. 너드들) 에서 만난 사이인 걸 어필하는 것 같아 좋고… 둘이 싸운지 얼마 안됐는데 그래도 같이 행동할 수 있는 그 이성이 너무 좋더라구요. 여기서 C가 D한테 그런면이…(그러니까 뭐랄지, 대처할 감도 안잡히게 + 사람 말 듣고 있지도 않는 것처럼 일단 싸운 사실은 잊고 말을 걸어주니 기뻐하는 점 같은 것.) 짜증난다고 했던가. 저는 그걸 참 좋아했습니다. D는 거기서 나름 충격을 받아서 10분 정도 고민을 하며 서있었지 뭡니까… 그때는 진행상 말 못했지만, 그 무렵 D는 자기 여동생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동생이 말했던 때와 똑같이 ‘자신은 이런 상황의 원리는 알지만, 그렇다고해서 다르게 행동하는 법도 모른다’는 사실을 되새겼죠. 그러나 C는 아직 가족만큼 가까운 사이도 아니고 / 스스로의 중요한 기준을 접으면서까지 유착되지 않는 건강한 관계가 바로 C가 원하는 것일테니 여기서 D가 관용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동생은 이해했냐고요? 그녀는 ‘됐으니까 다치지 말고 살아’ 하고 있습니다.)
과연 D는 C가 근본적으로 느낀 짜증(?)을 거둬내 줄 수 있을까요? 둘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 찾아올까요?! (투비 컨티뉴)
참고로 A는 자신이 “말도 안듣고, 사람들을 구하겠다고 설치는 녀석들이 귀찮” 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다른 npc의 입으로 듣고 정신이 확 들었습니다. 아니 심지어 그 친구랑 달빛이 비치는 해변가에서 오붓하게 나란히 앉아서 모든걸 털어놨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 기억이 생겨나자 그럴리가 없다 싶었던거죠. 각자 내가 그럴리가 없다, 세상이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포인트가 저절로 드러나게 돼서 저는 작은 개변을 던져줬는데 다들 참 잘들 집어가셔서 끝내주게 돌려준다 싶었습니다… 여기서 재밌는 건 A가 그 전까지 조사하면서 지금 이 끝내주는 행복을 깨는게 기현상 녀석들이 아닌가 하고 생각을 했다는 점이에요. 그걸 막상 남의 입으로 들으니 ‘아니 내가 생각은 했어도 그걸 너한테 왜 말한단 말이냐’ 된 것이 참 재밌죠. 찰나의 생각이 꼭 진심이란 법도 없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얘네가 죽는건 내가 죽는 것 만큼 싫을 수도 있는 겁니다.
그… 미드소마를 참고해서 애들을 꼬시려고 시도했으나 잘 안먹혀서… 캐릭터들의 기억을 좀 지운 npc의 존재를 등장시켰는데요. 그래서 C는 ㅋ 숲의 잎사이로 비쳐드는 햇빛속에서 비밀스런 대화를 한 기억이 있습니다. 최대한 클리셰 로맨스영화같고 ‘아니 제가 그랬다고요’ 싶은 내용으로 골랐어요. +그래서 B,D한테는 ㅠ ㅠ 어느정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먹힌 것조차 없습니다. 둘다 로맨스씬 브레이커니까요. 농담이고, D는 1~2일차까지 마을 출신인 친구가 곁에 있었으니 대상에서 스루됐고 / B는 여러 시도가 있었는데 자기 비밀을 기분좋은 상태에서 말하는게 환각제의 약효랑 충돌했을 것같아서 입니다.
이러저러 애들이 헤매고 다니면서 절벽길에서 선착장으로 넘어가는 길을 찾겠다고 숙소에 불을 지르고 / 도서관을 털고 / 구를 훔치는데요. 개인적으로 정말 행복했습니다… 내가 내 탁에서 자발적으로 불을 지르겠다고 선언하는 pl을 만나다니. 횃불 구해다가 식당에 불지르고 저벅저벅 도서관으로 가던 친구들… 짱이었습니다.
이 장면… 007스카이폴 엔딩씬 근방에서 저 멀리 불이 난 건물을 등지고 초원을 가로지르는 씬이 있잖아요? 그 씬의 이미지를 생각했습니다. 때마침 도달한 도서관도 신전같은 분위기고요. 걍 영화 좋으니까 한 번 봐주시라고 이야기 합니다 ㅋ^^
(이걸론 부족하지만, 그냥 바로 보고 싶은 분들을 위한 이미지 링크 첨부: https://mblogthumb-phinf.pstatic.net/20121213_160/hey88_135540855320103gmP_GIF/tumblr_me6jvn486N1qiyvkio2_500.gif?type=w2)
여기서 이제 A가 도서관 앞에서 쫓아온 마을사람들 2명과 다이다이를 뜨고 나머지 친구들이 자료조사를 했지요. 일부러 패배한 마을사람 2명이 왠지 서로 쩌서깊관이 있어보이고, 뭔가 불쌍해보이고 이런 설정을 넣었는데요. (되도록 길게 묘사 안했지만) 저는 결국 이런 극단적 상황에서 우리들의 생존은 어떤 형태이며, 그것이 선했는지, 선하다면 선은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 매번 기현상 탁에서 보고싶어하는 편이거든요. 여기서 못 이기면 우리를 냅다 제단에 묶어다가 산제물로 바칠 사람들을 때리는 건 결코 악이 아니지만, 그렇다면 이제 이 순간의 정의는 피묻은 얼굴을 한 A인 것이죠. 너무 단순하게 일축했나요? 하여튼 아이러니는 재밌는 거예요.
이후에 마을사람들에게 임시로 운을 주고 운판정을 했는데 극단성공이 떠서; 불은 거의 하룻밤만에 진화됐습니다. 이것도 너무 좋았어요. 다이스신이 뭐를 압니다. 2대 1로 뜰때는 강인한 한명조차 못이기는 사람들이지만 미드소마-서던리치의 중심 주제는 식물이잖아요? 숲은 언제나 나무보다 강하죠.
이제 숲에서 있던 불침번 환각씬. 개인적으로 제가 하고 싶었던 + 계획한 부분은 여기였습니다 ㅠㅠㅋㅋ 원래는 애들이 태양도 없고 숲에 겨우 왔으니 하룻밤 재우고 아침에 추격 4라운드해서 선착장 보내야지! 중이었는데 애들이 “그럼 불을 지른다.” 이래서 ㅠㅠㅠㅋㅋㅋ
여튼 애들 각각의 환각을 차례로 묘사했는데, 간략하게 이랬어요.
- A: 파스텔톤으로 변한 세상에서 잠든 친구들의 어깨위로 풀이 자라나고, 그들이 전부 풀에 묻혀서 일부가 되고, 손을 뻗은 넝쿨을 잡으려고 보니 손 뻗은 사람(이었던 나무)이었다. 이 상황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겨우 깨어나면 다시 손을 뻗고, 겨우 깨어나면 또 손을 잡으려 하고.
어떻게든 이 미친상황에서 벗어나려 애쓰며 횃불에 손을 갖다댄 A를 자다 깬 C가 발견하고 떼어냅니다. 이거 참 좋은게, 이 시나리오 내내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환각에서 깨려나? 했는데 자기 뺨을 때려본 C부터 시작해서 꾸준히 가장 현실적인 녀석들이 (A,C) 자길 해치는 한이 있어도 자해해서 정신을 차렸다는 거예요. 이후레 B,D가 같이 남았는데 D는 소리지르는 B를 끌어안고 자기 환각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는게 참 좋았다네요. 이 둘은 자긴 때려도 남은 때리기 망설이는 이상주의자들이죠.
- C: 상황이 이상하다 싶을때, 때마침 D가 깨어나서 같이 대화했습니다. 화해할 수 있을지도 몰랐어요. 이 D는 ‘당신이 사실 듣고 싶은 말을 안다.’ 고 사려깊게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는 새에 앞에서 만났던 병아리 토끼 (몸은 병아리지만 머리는 토끼!) 들이 횃불 주변을 돌며 춤을 추는 풍경을 봅니다. D가 나무가 됩니다.
전 다들 빨리 눈치채실 줄 알았는데 다들 이 D가 짜가인걸 모르고 놀라주시더라고요. 기뻤습니다. 여기서도 앞에서 파훼법을 학습한 C가… 심지어 자기가 A한테 다치면 안된다고 어쩌고 잔소리 해놓고 똑같이 나무에 머리를 박고 이마가 시뻘개집니다. D는 사실 C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알다가도 모릅니다. 알더라도 말할 수 없는 녀석일지도 모르고요. 그런 것보다 자길 해치면 안된다고 잔소리하면서 재우는게 익숙한 녀석이죠. 그 지점은 C랑 같습니다.
- B: 앞서 촌장의 집에서 본 환각과 비슷합니다. 어린 아이들 목소리로 노래하는 나방들이 (참고로 B와 함께 나오는 나방은 언제나 그… 귀여운 친구 아시죠. 새하얗고 포실포실한. 걔랍니다.) B에게 애원하고, 간청하다가 나중엔 동요를 불렀습니다. B의 어린시절 가장 많이 들어본 노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 D: 이 녀석은 앞서 가장 먼저 위화감을 느낀 이유가 여기 오게 된 계기였던 친구가 나무가 되어 죽었고 / 그러므로 자신의 소망은 이미 깨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환상에 나왔습니다. 그 말고도 이미 죽은 친구들이 나왔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대화했고,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환각이라는걸 인지했지만, 처음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어요.
이 둘의 환상은 한 자리에서 서로에게만 작용하는 식이었어요. 둘이 혹시나 싸우지 말라고 걱정한 C 와 달리 둘은 서로 지키겠다고 끌어안기는 했는데 나가고 싶다는 애를 구해주지도 못하고, 스스로 가장 달콤한 꿈에서 나오지도 못했습니다. 깨어난 A랑 C가 탈탈 흔들고 ㅠ 뺨을 때려서 깨웠어요. 참고로 A의 기본 공격은 db까지 1d3+1d6 입니다… 맞아본 적이 있는데 이야, 풀피여서 망정이지 정말 천당에 계신 D외할머니랑 D가 드디어 재회할 뻔 했다니깐요. 그래서 C가 D를 부득이하게 때렸습니다.
이러저러 제 캐릭터의 환상에 관한 요소는 제가 진행자다보니 혼자 떠들기 싫어서 (ㅋㅋㅋ) 되도록 줄였는데 말이지요. 그래도 서사상 앞뒤를 잘 맞춘 것 같다고 자가 평가 해봅니다. 이 녀석은 B와 닮은 구석이 있어서, 언제나 이성과 희망으로 버티며 대미지라곤 입지 않는 것마냥 굴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 앞에서는 스태미나가 쭈우욱 떨어집니다. 그럴 때는 유혹에 약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지금처럼 누군가를 잃었고, 그 사람을 만날 유일한 방법이 눈앞에 내밀어질때요.
+ 이후 추격도중 장애물 처리하면서 C가 외주 넣은 클라이언트한테서 전화 오는 환상을 겪는 것. 개인적으로 평소에도 하고 싶었던 거라 행복했습니다. 우리애는 이걸 또 마감 목록을 지능으로 떠올려서 깼습니다… 산치체크 해야될듯.
참참, 원래는 진상 해결이나 구가 이 마을이 이상해진 원인이다! 하는 명백한 힌트같은 것은 제공이 안되는데요. 그래도 진상으로 보아선 이것이 우주에서 온 색채일테고… 그럼 딱 이거라도 우주로 돌려보내거나 심해에 갖다 주면 되지 않을까? 하고 제안을 드렸습니다. 우리 친구들은 이걸 급한대로 바다에 갖다 버렸는데…
^-^
(히히. 언젠가 일 터지면 좋겠다.)
너무 잘했지요?
새삼스럽지만 마스터는 역시 플레이어들이 끝내주면 되는 것같아요. 저의 이… 크리처 무한제공 세션(줄여서 크무세. 어라, 크툴루랑 같은 크씨인걸?) 의 후기를 마칩니다.
할말이 무진장 많았는데 자꾸만 잊어버려서… 나중에 또 생각나면 추가하겠지요! 아디오스! 크툴루 프타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