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정말 읽지 말라고 적는 글은 아닙니다.
*특정 작품을 노리고 적은 내용은 아닙니다. 요즘 읽은 것만 따져도 제가 뭘 읽었는지 가끔 잊어버립니다. 안심하세요. 이것은 타인의 눈에는 뵈지도 않을 수 있는 저만의 시류 감상입니다.
새해부터 뭔 글을 적는 건지… 저는 심지어 원래 (이것말고) 쓰려고 했던 글도 있고, 하려던 일도 있고, 그랬습니다. 그런 와중에 웹소설을 틈틈이 너무 많이 읽은 사람입니다. 일해야하는데 읽다가 상념에서 기어나오기 실패한 나머지 이 글을 적습니다. 이 글을 어느날 제가 웹소설을 너무 열심히 피우다 쓰러졌을 때, 저의 묘비에 적어주십시오.
‘세상에 자기가 읽는 텍스트를 너무 오랫동안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그러라고 쓴 것도 아닌데’ 라고…
너무 많이 읽었다. 냅다 그렇게 적었지만 그 정도는 아닙니다. 아마 흔히 본인을 웹소설 독자라고 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연재작 3~5개를 잡고 종종 연재주기도 잊어먹어 가면서 읽는, 딱 그 정도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저는 대충 몇년전만 해도 웹소설을 똑바로 읽지도 못하는 인간이었는데 (핸드폰 화면이 눈 아프기도 하고, 종이책을 더 좋아했습니다.) 어느새 여기까지 왔으니 장족의 발전이라고 해야겠지요.
원래는 그냥 재밌으면 재밌는거고 아니면 만다. 식으로 글을 읽어왔는데 근래에 습관적으로 읽어제끼다 보니 제 몸에도 필연적으로 온갖 생각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읽는 내내 가장 자주 저 자신에게 물었던 부분은 이것입니다.
“어떻게 이 정도로 한결같이 보수적인가”
어우, 제목블록 불러왔다가 글씨 너무 커서 줄였습니다. 줄여도 진지해보이네요. 저 이탤릭체만큼 진지하게는 아니고요, 하여튼 때로 보수적이지 않은 정도를 넘어서서 도전적인 작품들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전부를 저렇게 묶을 수는 없겠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조회수를 확보하고 메인스트림에 올랐다 싶은 작품들은 몇가지 특징이 있어요. 흔히 이야기 나오는 점 (주인공 혼자 다해먹는다, 먼치킨, 정보 독점 등등) 을 제외하고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그 대사 아시나요. ‘아아…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세계의 완성이다.’ 이게 아마 내청춘(안 읽었습니다. 미안해요.)에서 나온 대사? 독백일텐데, 보통 드립으로 더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재밌는건 이 드립 칠 때마다 사실 누가 상처받긴 받은 것 같다는 말이죠. 폼잡으면서 말하는 것치고는 말하는 본인도 좀 힘들어보이고… 이 소릴 왜하냐면 웹소설 주인공들의 스탠스가 대체로 이렇기 때문입니다. 주조연이나 작품속 다른 인물들에게 그런 것이 아니라, 독자들에게요.
이 주인공들은 늘 독자들을 위해 삽니다. 플롯이나 소재보다 앞서 그들의 가장 가까운 동료는 독자일지도 몰라요.
흔히 고전이라고 불리는 작품이라고 주인공이 독자의 비위를 맞추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플롯 위주의 소설과 다르게 캐릭터를 내세울 때는 인물이 아무리 쓰레기같아도 매력적인 선을 벗어나지 않는 모습이 많이 보여요. 다만, 웹소설의 재밌는 점은 그런 특성이 대충 5배쯤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독자는 주인공과 몇백화 정도 함께 할 때가 많고, 웹소설은 이전세대의 문학과 다르게 체험하는 느낌이 조금 더 강하기 때문일까요? 주인공은 일반인들이 취직할 때 옆자리 동료나 사수로 희망하는 사람같습니다. 어지간해선 독자 심기를 완전히 거스를 행동을 안해요. 정확히는 독자가 무얼 원하느냐에 따라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독자 타겟팅도 아주 정확해서, 불편한 지점이 생기면 사이다를 먹이고 사이다를 주면서는 매력도 어필해주죠. 판단능력은 언제나 아주 나빠서는 안되고 되도록 좋아야 합니다. 악독하고 악착같으면서도 내 사람에게는 순하고 매력적이어야하고, 영웅적인 역할도 챙기며 자신의 내적 상처도 (되도록 3화 이내로) 수습해야 합니다. 이런 면들을 작가들이 기워넣고 개성을 부여하는 작업이 초반엔 미비하다 작품 후반으로 갈 수록 눈에 띄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면 주인공의 성격 자체가 독자 체험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상당히 평탄하고 친숙해집니다.
‘일반화’ 된다고 할까요. 여기서 제가 늘 묻는 이야기가 나와요.
이것이 일반이라면, 이 소설속에서 주어진 일반은 대체 어떤건가?
웹소설을 읽으면서 ‘까만 피부’ 라는 표현을 종종 봤어요. 그럼 우선 주인공은 동아시아인이거나, 백인이라는 소리겠죠. 주변인들도 많은 경우 그렇기 때문에 까만 피부는 그 캐릭터의 특성으로 자리잡습니다. 일단 그 친구에게만은 인종이 외모특징이 되죠. 일단 타겟이 되는 독자가 동양인이고, 많은 경우 한국어 사용자라는 소리입니다. 백인 화자라면 우리가 백인을 선호한다는 것이고요. 글로벌시대에 한국이 얼마나 다인종국가이냐는 차치하고, 적어도 독자가 자각하는 선을 그렇게 그어두는 것이 대중적이라는 것만은 잘 알 수 있습니다.
현대로 나아가서 동양인 외의 외국인이 등장하기라도 하면 주인공의 반응이 정말 재밌어집니다. 무척 소시민적이에요. 동시에 열심히 타자화하고 열심히 대상화하죠. 신기한 생물을 바라보듯이 묘사합니다. 같은 극동아인이 등장하면 곧장 정치적인, 혹은 애매하게 돌려 말하는 혐오가 드러납니다. 작가 성향따라 달라서 아예 그런 묘사를 안쓰는 경우가 있긴 해요. 하지만 읽다보면 7할 정도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K-적 감성은 주인공이 한국인이라면, 언제나 남아있는 편입니다. 유행가를 꿰고 있다거나, 어딜가도 밥먹었냐고 물어본다거나, 밥도 안먹이고 일시켰다면 화내거나, 어르신 막말에 잠깐 움츠러든다거나, 마찬가지로 막내면 남들 수저 놓는 버릇이 있다거나, 야쿠르트 아줌마를 찾는다거나… 등등이요. 동시에 K-적 문제는 비판되기도 하고 비판되지 않기도 합니다. 어느 면에서는 맹렬하게 비난하지만(직장상사 갑질 등), 어느 면에서는 건드리면 복잡하고 길어지는데 앞뒤를 맞추기도 오래 걸리니(재벌인 주인공은 과연 하청업체 등골을 빠는가 마는가 / 노조와의 협상이 정말 그렇게 평탄했는가 등) 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앞서 말한 것들이 그대로 나오기 때문에 당연히, 주인공은 내심 연공서열을 은은하게 정합니다. 그런데 또 ‘꼰대’ 같은 행동은 안해요, 그건 멋이 없으니까요. 아님 그냥 꼰대인데 무해한 것처럼 묘사되든지요.
주인공이 권력자에서 출발하느냐, 밑바닥에서 출발하느냐는 매번 다르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지만, 재밌게도 각자 어느 정도의 폭력성은 쥐고 있습니다. 법치로 해결보는 것은 느리고, 혼란스런 미디어와 대중은 가까우며, 주먹은 더욱 가깝죠. 자력구제가 권장되고 악당의 뺨 정도는 때릴 수 있습니다. 장르따라 다리정도는 날아갈 수도 있는 거고요. 악역이 처리되고 난 다음에는 악행이 나열됩니다. ‘음, 그럴 만 했군’ ‘잘하긴 했네’ 가 가능하게끔요. 주인공은 이 모든걸 해낼 수 있는 성격이에요. 그게 바로 누구나가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죠. 안 그러면 사회생활할 때 참고 사는 일반인과 똑같아지기 때문입니다. 이제 글을 읽으면서 그런 고통 간접 체험을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중세 or 서양 판타지 계열로 빠지면, 많은 경우 주인공은 귀족입니다. 그리고 하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하인들은 쉽게 주인공의 소탈함에 빠져들어 친분을 쌓고 충성하기도 합니다. 읽는 사람이 바라는 게 애초부터 내게 주어진 것을 쉽게 베풀었을 뿐인데 크게 돌아오는 관계라는 뜻도 되겠죠. (물론 모든 독자가 바란다고는 안했습니다. 저도 독자입니다.) 무엇보다, 귀족은 언제나 압도적인 힘을 지녔고 신성시 되었으며, 하인들은 반항하거나 사기치지 않는다는 인식이기도 합니다. 물론 공작, 후작쯤 되면 당연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저는 하필 왕정시대 말기에 몰락귀족 얘기를 너무 읽었더니 상냥하고 망충한 메이드가 낯설더라고요. 원래 하인들 도망가면서 귀금속도 털고 그런거 아니었나요? 주인 겁박하는 사용인 있지 않았나요? 청소 막 대충하고…욕하고…아님 말고…
사람을 원하고 사람을 쉽게 얻으며 사람을 통해 성장하는 특성상, 주인공들이 자신의 범주 내 인간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경향도 있죠. 이건 사실 이전의 소년만화나 다양한 작품들도 이런 식이었기 때문에 별 새로운 특징은 아닌데요. 하지만 정말 가끔가다 놀라울 정도로 주인공이 자신의 ‘주인공조’ 를 위해 헌신하고 그들만을 생각하는 모습을 보다보면 가족적 구도가 현대인에게 절실한가보다 싶기도 합니다. 여기서의 일반은, 이를 테면 나는 내 사람부터 챙겨. 겠죠. 아닌 작품들도 있다지만 (이 얘기는 이미 앞에서 했으니 생략합니다) 이전 장르들보다 좀 더 ‘내 사람>다른 사람’ 의 구도가 딱 3배정도 강화된 느낌의 작품들이 많습니다. 그것이 주인공의 안정이고, 새로운 중심 정의로 부상하기도 해요.
그 외… 아이고 적다보니 너무 많네요. 일단 생략하고.
우리는 결국 이 웹소설에 바라는 게 많습니다. 폭력성, 결단력, 권력, 실천성, 내가 못하는 매력적인 행위들, 내가 몰입가능한 ‘일상적인’ 생각을 가진 주인공…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이 웹소설 세계는 독자의 편의를 봐주며 독자의 욕망에 충실하기에 결국에는 누가 적극적으로 보수적이려고 한 게 아니더라도, 하여간에 아주 보수적입니다. 위의 요소들이 보수적이라기보단, 위의 것들을 원인으로해서 보수적인 대사도 치고, 보수적인 생각만 하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보수적인 선택도 하고…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야 당연히 자기 자신과 주변인의 단기성 안정과 변동없는 미래를 좇다보면 당연히 그게 보수 아니겠어요. 그리고 우리는 웹소설에 그런 안정감을 요구합니다. 현실에서 한 고생은 접어두고 좀 더 단순하거나 비현실적이 되길 바라죠.
세상이 멸망하고, 주인공이 산산조각이 나고 루프를 돌고 이래도 하여튼 그런 안정은 꾸준하게 주인공의 내면에서 추구되죠. 설령 때로 그가 상념에 빠져 ‘이게 맞나’ 한다고 하더라도 이 세계는 독자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고민이 결과와 실천의 방향을 바꾸진 않습니다. 그는 행복해질 것입니다. 자기자신(혹은 사랑받는 주조연들)을 위해서요.
그런데 이게 정말 누구에게나 안정적이고 상처 안받는 세계의 완성은 당연히 아니라는 거죠. 위에 누군가는 상처 받긴 받은 것 같은데… 한 것처럼 저들의 일반에서 벗어난 독자는 이따금 상처도 받을 겁니다. 물론 냅다 누굴 펜으로 그어버리겠다고 글을 쓰는 작가도, 그러기 위해 결제하는 독자도 없습니다. (이래놓고 정말 있다면? 왜 그렇게 사십니까 정신을 좀 차려보십시오)
모든 것은 욕망의 문제입니다. 대단한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 때문에 보수적이라는 것.
적을 수록 깨달은 것이지만 결국 현실에서 어떤 생각을 하건 ‘생각하고 싶지 않다’ ‘쉬고 싶다’ 는 욕망이 대중 미디어를 지배하는 것 같기도 해요. 저는 제가 아는 현실이, 제가 아는 극단까지 재현되는 것을 좋아하고 거기서만 매력을 느꼈던 인간이라 이것을 아주 느리게 깨닫고 있습니다. 사람이 바라기 때문에 글로 적히고, 바라는 것을 적은 내용이 결국에는 본인도 모르던 의미를 갖는 것이죠. 냅다 뭉뚱그리면 ‘그냥 한국사회가 우경화된거야’ 이럴 수도 있기는 한데요. 이것도 맞을 수는 있는데, 전 슬프게도 대다수의 독자들이 그렇게 관념적인 사고, 예리한 사상을 갖고 웹소설을 읽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게 지적하는 사람을 지치게 할지라도, 사실입니다.) 그들은 지쳤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하교나 퇴근 후 드러누워 웹소설을 읽습니다. 하여 그것보단 좀 더 단순한 문제이지 않을까 싶었어서 이 글을 적습니다. 이게 문제라면 적어도 파악은 해야 바뀔지 말지 정할 수 있는 거니까요.
많은 사람들은 생각을 안하고 읽고 싶어하니 이건 그냥 그 다수의 욕망이 투명하게 투영된 결과물인 것입니다…(그 욕망은 너무 투명할 수록 지저분하고요.) 사상적 차원보다 앞서서 읽기의 태도와 시장성의 문제니, 정 살핀다 해도 이쪽부터 살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팔리는 이상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누구도 본인이 소설을 읽어서 남을 해친다고 믿으며 읽지 않을 겁니다. 정 얘기해도 거기서부터 얘기해야하죠. ‘재미때문이면, 꼭 이래야만 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 고요.
저는 이런 소리를 하면서도 웹소설 시장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도전적인 작품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도 모두 좋아하고, 저렇게 뭐라고 해놓고 메인스트림의 작품들도 잘만 읽었습니다. 제 마음은 그와 별개일 뿐이죠.
왜 끊임없이 웹소설을 읽으면서도 그 놈의… ‘어지간한 인간들이 고작 재미를 위해 상처 받지 않는’ ‘그러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는 없는가, 를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요. 저는 오늘, 이 2023년 첫글에서.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사실 하고 싶은 얘기가 더 있었어요. 작품 간의 소재 차용 빈도나, 그런 차용이 패러디와 오마주를 넘어서서 침해에 도달하는가 하는 지점이나, 침해가 아니라면 이 작품간의 ‘교류’는 이 시장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이게 법적 문제 없이도 거슬린다면 나는 그냥 상도덕을 신경쓰는 것인가, 창작업계의 상도덕은 엄격한 것을 떠나 명백히 존재는 하는가 하는…
언젠가는 쓰겠죠? 아니면 말고.
1월 첫글로 꼭 오타쿠잡설을 해피하게 적어야지 했는데 이게 또… 이렇게 됐네요. 신년에 정신이 없는 새에 피곤할 때마다 읽어댔더니 왜? 가 떠나질 않아서 그만.
결국에 저는 지쳐서 글을 읽는 사람이기에 그런 저 자신의 지침을 기반으로 쓰였습니다. 저 스스로도 웹소설 독자이기에 선해한 부분이 많을 수도 있고, 그런 점에서 부족함을 느끼셨다면, 혹은 반대로 웹소설이 반드시 보수적인건 아닌데? 라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언젠가 어딘가에 정리해 글로 써주신다면 인터넷 망령/활자 오타쿠인 제가 찾아 읽고 즐거워할 것입니다. (비록 여기 댓글창은 제 편의로 지인 외에 싹 닫혀 있지만, 저는 제 서치 실력과 할일없음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드디어!! 하고 싶던 말!!!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٩(・ิᴗ・ิ๑)۶✲゚。✧
+이하 2023/01/19 추가글
아무도 뭐라고 안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글이 너무 너저분한 것 같아서 덧붙입니다. 해당 글에선 여러모로 혐오표현과 정치적 보수성향과, 웹소설이 지향하는 방향과 독자의 소망이 정확한 정의와 구분없이 뭉뚱그려져 있습니다. 결론또한 해당 사유로 다소 납득할 수 없는 논리전개를 보여줍니다. 제가 짐작하기로 (새해부터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저는 기억을 다소 잃었습니다.) 제 의도는 웹소설계 전반의 모든 성향을 옹호하거나, 그 내부의 소수자혐오까지 얼싸안아 ‘편하자고 이러는 거야’ 라고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겁니다. 정확히는 이전의 다른 장르들과 달리 평론이 효력을 지닐 수 없는 고도의 상업화된, 모든 독자의 요구가 급속도로 반영되는 장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테죠. 그러므로 작품에 윤리를 요구하고, 정치적 올바름을 요구하는 행위는 우선 팔리는 상태에선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읽기의 태도와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이전과 판이하게 다르기에, 결국 독자들이 바뀌어야 합니다. 어느 장르나 그래왔다고 하실지 모르지만, 웹소설은 반응형 장르니까요. 독자들이 바라지 않으면, 나오지 않습니다. 팔리지 않으면, 쓰이지 않습니다. 생각하고 읽으면 결코 기대하지 않을 내용이라면,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 단순한 이야기를 왜 저리 어색하고 얼렁뚱땅한 논리로 적어둔 것일까요?
역시 저도 편히 쓰고 싶었기 때문이겠지요…세월이 지나도 콕콕 마음에 걸려 적어둡니다. 아마 언젠간 좀더 멀쩡한 소릴 적어두겠죠?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고생하셨습니다. 이런 걸 적어놨지만 웹소설 열심히 읽어주세요. 재밌는 게 많으니까요. 우리 인생 아자아자 화이팅.
올리고 보니 수정할게 보여서 뒤늦게 덧붙인 문단이 있습니다.
웹소설 얘기라니 넘흐 조아요…. 더써주세요….😍😍😍😍
이럴수가 구글 닉넴으로 올라가벌엿잔아
저는 한우입니다
아 ㅠㅠㅠㅠ 한우님 구글 로그인 작동이 되나보네요 분명 제가 아직 등록중이었을텐데?! (일단 혹시 두번은 안될 수 있으니 얼른 허가 받아올게요)
여튼 웹소설 얘기… 적고도 뭔가 논리가 헐랭벌랭한데…중이지만!! 뭔가 더 발전한 모습으로 ㅋ ㅠㅋ 머리가 핑핑 잘 돌 때 당기면 또 써올게요 알라뷰.